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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인물의 재구, 『松溪實紀』 편찬의 정치사회학적 고찰

A Study on the Political and Sociological Consideration of the Reclaimed Compilation of a Forgotten Charac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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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고는 松溪 申季誠(1499~1562)이라는 한 處士의 삶을 재구하고 있는 『松溪實紀』가 편찬․간행되기까지의 과정을 정치사회학적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지금 우리들은 신계성이란 이름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南冥 曺植의 절친한 동지이자 佔畢齋 金宗直을 사숙한 후학으로서 김해의 新山書院과 밀양의 禮林書院에 배향될 정도로 명망이 높았다. 뿐만 아니다. 松堂 朴英의 학맥을 계승하고 있어 16세기 전반 道學史의 다채로운 분화와 계승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도 관건이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로 이어진 중종-명종대의 혼란한 정치현실과 결별한 채 평생 포의로 생을 마감했기에 두드러진 행적을 남기지 못했다. 게다가 그리 많지 않던 遺稿마저도 임진왜란을 겪는 과정에서 전부 소실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그는 사후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점차 잊혀져갔고, 그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던 제자와 후손은 그의 존재를 되살리기 위해 250년 동안 실기 편찬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세기 초반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결과물이 바로 『송계실기』이다. 거기에는 오랜 세월 동안 전개된 추숭작업의 성공과 좌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조대의 사림정권 성립, 광해군대의 북인정권 부상, 인조반정을 통한 집권세력의 교체, 그로 말미암은 영남 사족집단의 분화, 등등. 『송계실기』의 편찬은 조선후기의 복잡다단했던 정치사회학적 맥락과 민감하게 연동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선조대의 李浚慶, 광해군대의 鄭仁弘, 인조대의 張顯光, 순조대의 宋煥箕와 鄭宗魯와 같은 당대 거물들도 그 실기의 편찬 작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일견 하찮아 보이는 『송계실기』라는 작은 책자는 16세기 중반 이후에 전개된 중앙정치와 지역사족의 연계 지점을 예민하게 관찰할 수 있는 프리즘이기도 했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process of compiling the life of an obscured scholar in Miryang, called Songgye Shin Gye-seong (松溪 申季誠 1499~1562), in a political and sociological context. Now we hardly remember this figure by name. However, he, a close comrade of Jo Sik(曺植)’s and a sincere follower of Kim Jong-jik(金宗直), was well-known enough to be enshrined in Sinsan Seowon(新山書院) in Gimhae and Yerim Seowon(禮林書院) in Miryang. Besides. he inherited the tradition of Park Yeong(朴英), who was a key figure in explaining the diverse aspects of the history of ethics(道學史) in the first half of the 16th century. However, Songgye(松溪) did not leave any notable mark because he lived a life of loyalty for his entire life after breaking up with the chaotic political reality during the reigns of Jungjong and Myeongjong. In additi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壬辰倭亂), even his few posthumous works were completely destroyed As a result, Songgye(松溪) was gradually forgotten after his death, so his disciples and descendants felt sorry for it, and for 250 years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compilation of Songyesilgi(『松溪實紀』), to revive his real existence. After such efforts, Songgyesilgi(『松溪實紀』) saw the light in the world. It contains the traces of success and frustration of the long-running process of revering and raising up his real existence. And they had an inseparable relationship with the political and sociological context of the Joseon dynasty. In particular, the great figures of the time, such as Yi Jun-gyeong under Seonjo’s reign, Jeong In-hong under Gwanghaegun’s reign, Jang Hyeon-gwang under Injo’s reign and Jeong Jong-ro under Sunjo’s reign, were deeply involved in the compilation of Songgye’s works. In this regard, one of the seemingly insignificant literature, Songgye Silgi(『松溪實紀』), was also a sensitive prism that gauged the political and sociological context that developed after the Mi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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