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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년의생 연구

A Study on Yeongnyeon-euisaeng under Japanese Occu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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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영년의생은 정해진 기한이 없는 면허를 받은 의생이다. 영년의생은 한의계에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한 구성원이다. 본 연구는 영년의생에 대한 이해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방법에 있어, 논자는 관보를 토대로 영년의생에 대한 여러 통계를 내었다. 논자는 관보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았다. 첫째, 기한이 정해진 면허와 영구적인 면허가 섞여서 발급되었다. 둘째, 영년의생은 당시 평균 수명에 비해 장수했다. 셋째, 영년의생의 거주지는 함경남도의 비율이 매우 높다. 넷째, 해방이후 영년의생은 한의사 제도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또한 논자는 영년의생과 유의의 상호관계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했다. 유의의 영역은 17세기 이후 감소되어왔다. 일제 강점기라고 해서 특별하게 그 영역과 지위가 축소되진 않았다. 다만 한의학과 성리학의 지위 하락과 함께 유의 또한 도태되었다.

Abstract

Yeongnyeon-euisaeng (永年醫生) was a licensed Euisaeng (醫生) without time limit. Yeongnyeon-euisaeng was a member of bridging the gap between Joseon Dynasty and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hanuigye (韓醫界). This study aims at better understanding the Yeongnyeon-euisang. In methods, several statistics have been served about Yeongnyeon-euisaeng on the basis of the Official gazette. The following facts have been found through the Official gazette. First, the time limitted licenses have been issued mixed with a permanent license. Secondly, Yeongnyeon-euisaeng lived longer than other people. Third, the residence of Yeongnyeon-euisaeng was a very high proportion in South Hamgyong Province. Fourth, Yeongnyeon-euisaeng played an important role in Korean medical doctor (韓醫師) system after the liberation. In addition, the correlation of multilateral for Yeongnyeon-euisaeng and Confucian doctor were examined. Area of the Confucian doctor decreased since the 17th century. Confucian doctor’s region and position declimed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But Confucian doctors were also culled as status of Korean medicine and Neo-Confucianism decli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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