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권 내 주변 諸國의 세계관 -한반도의 제 왕조를 중심으로-
The World View of the Countries belong to the Chinese Cultural Area: Focusing on the Dynasties of Kor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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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한반도에서 흥망한 전근대의 제 왕조는 고대 이래 중국문화권의 주변국으로서 일관되게 중국 왕조와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또한 중국 황제의 덕을 사모하여 조공한 중국 주변의 제 민족(四夷) 중에서도 가장 충실하였던 東夷의 일국으로서, 세계인식도 스스로를 중국 황제의 천하적 세계관 속에 적극 자리매김했다고 간주되어 왔다. 다만 근세의 조선 왕조는 명 멸망 후 이민족 왕조인 청을 정당한 왕조로 인정하지 않고, 명 왕조를 계승하는 ‘소중화’라는 독자의 세계관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는데, 어느 쪽이든 중국의 세계관 속에 자기의 세계관을 구상하고 또 그 속에 자기의 세계상을 정립하고자 했던 발상에 있어서는 일관되어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요컨대 거시적으로 보면 한반도 왕조의 국왕은 고래 중국 황제의 천하적 세계관 하에 스스로를 신하로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고려시대에 이르러 과거제도가 도입되고, 중국적인 교양이 관료 선발의 기준이 되고나서부터는 고려, 조선 왕조로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왕조의 지식인들은 중국적 세계관에 자신을 중첩시켜 갔으며, 점차 중국의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천하적 세계관을 전제로, 그에 포섭된 일원으로서 자기 인식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한반도 제 왕조의 세계관은, 오늘날 전해지는 한반도 제 왕조의 역사서에서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로서, 중화이념과 어긋나는 일면을 전하고 있다. 더구나 그 사서들이 동시대의 세계관을 충실하게 전하고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예컨대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나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는 주변국 지식인으로서 중국의 세계관을 내면화한 가치관으로부터 편찬된 것으로, 한반도 과거 왕조의 일들 중 자신들의 가치관과 어긋나는 제 사실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지탄도 하고 혹은 중국의 사서에 소재한 외교 기사를 많이 이용하는 등 중국적 천하관으로부터 한반도 과거 왕조의 외교를 기술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한국 사서들은 동시대 왕조 지배층 사람들의 의식을 충분하게 사서 속에 반영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와 같이 과거 왕조와 이후 왕조의 세계관이나 의식의 어긋남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금석문이나 목간 등의 동시대 자료(출토문자자료)를 통해서이며, 그러한 제 사료로부터 관찬 사서에는 전해지지 않는 고려 이전 제 왕조에 실재했던 독자의 세계관이나 세계상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신라, 발해, 고려 등 한반도에서 흥망한 제 왕조의 세계관의 전용은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지만, 본고는 그러한 출토문자자료나 편찬사료로부터 단편적으로 볼 수 있는, 제 왕조의 자신을 중심으로 한 독자의 세계관이나 세계상의 일단을 고구려, 신라, 고려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또한 2009년에 한국 학계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쟁을 실마리로, 현재 한국에서의 ‘통일신라’를 둘러싼 논쟁은 신라인의 세계관, 그와 완전히 다른 평가를 내린 고려 왕조 및 조선 왕조 지식인의 세계관, 그러한 세계관을 무너뜨린 근대 일본인과 그를 주체적으로 계승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한 현대 한국 지식인의 세계관(세계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논술하였다.
Abstract
韓半島に興亡した前近代の諸王朝は、古代以来、中国文化圏における周辺国として、一貫して中国王朝との関係を重視した。中国皇帝の徳を慕って朝貢した中国周辺の諸民族(四夷)の中にあって、最も忠実な東夷の一国として、その世界認識もまた自らを中国皇帝の天下的世界観に積極的に位置づけたとみなされてきた。ただ、近世の朝鮮王朝は、明滅亡後の異民族王朝である清を正当な王朝と認めず、明王朝を継承する 「小中華」という独自の世界観を形成するに至っているが、いずれにしても、中国の世界観の中で、自己の世界観を構想し、その中で自己の世界像を定立しようとする発想においては一貫しているとみてよい。 要するに、巨視的に見れば、韓半島の王朝の国王は、古来、中国皇帝の天下的な世界観の下に、自らを臣下として自己を位置づけていたことになる。とりわけ高麗時代に至って科挙制度が導入され、中国的な教養が官僚選抜の基準になってからは、高麗、朝鮮王朝と時代が降るに従って、王朝の知識人たちは、中国的な世界観に自己を重ね合わせてゆき、次第に中国の皇帝を中心とする天下的な世界観を前提に、そこに包摂される一員として自己認識をするに至ったとみられる。 しかしながら、上述のような韓半島の諸王朝の世界観は、今日伝えられる韓半島の諸王朝の歴史書ですら、理解しがたい事実として、中華理念と齟齬する一面を伝えており、しかもそれらの史書は同時代の世界観を忠実に伝えているとは限らない。たとえば、高麗時代に編纂された 『三国史記』や、朝鮮時代に編纂された 『高麗史』は、周辺国の知識人として中国の世界観を内面化した価値観から編纂されているのだが、韓半島の過去の王朝の出来事に対して、自分たちの価値観と齟齬する諸事実に対して厳しく指弾したり、あるいは、中国の史書所載の外交記事を多用することによって、中国的な天下観から韓半島の過去の王朝の外交を記述したりしている。つまりは、これらの韓国の史書は、同時代の王朝に生きた支配層の人々の意識を必ずしも十全に史書の中に反映させているとは言いがたい面がある。 このような過去の王朝と、その後の王朝との世界観や意識のずれが明確に見られるのは、金石文や木簡などの同時代資料(出土文字資料)を通してであり、それらの諸史料からは官撰の史書には伝えられていない高麗以前の諸王朝に実在した独自の世界観や世界像をかいま見ることができる。高句麗、新羅、渤海、高麗など韓半島に興亡した諸王朝の世界観の全容は、いまだ十分に知るには至っていないが、本稿は、それらの出土文字資料や編纂史料から断片的にうかがえる諸王朝の自己を中心とする独自の世界観や、世界像の一端を、高句麗、新羅、高麗の事例を中心に取り上げることにする。 さらに、2009年に韓国学界において新羅の三国統一をめぐり繰り広げられた論争を手がかりに、現今の韓国における 「統一新羅」をめぐる論争は、新羅人の世界観、それに対して全く異なる評価を下す高麗王朝、朝鮮王朝の知識人の世界観、そのような世界観を壊した近代日本人と、それを主体的に継承したり、あるいは批判したりする現代韓国知識人の世界観(世界像)を、あぶり出しているという事実を論述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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