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대 박승종(朴承宗)의 정치적 위상과 대외인식
Park Seung-jong’s Political Status and Perception of Foreign Affairs during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r.1608~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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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광해군 대의 유명한 戚臣인 朴承宗의 가계, 인맥, 관력을 포함하여 정치적 위상의 변동 과정을 탐구하였다. 아울러 광해군 재위 후반 국방과 외교의 총 책임자로서 박승종의 역할과 행보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박승종은 광해군 대 후반 정권의 실세였던 이이첨과 유희분이 격렬한 정치적 공방 끝에 정치 일선에서 동반 퇴조하는 흐름 속에서 그 권력의 공백을 메우며 최고 실권자로 부상하였다. 명과 후금의 무력 충돌이 가시화하는 상황 속에서 박승종에 대한 광해군의 신뢰와 의존도는 더욱 증가했다. 대대로 이름난 가계, 원만한 처세술과 폭 넓은 인맥, 세자빈의 조부라는 위상, 국방 및 외교 업무에 대한 노련한 식견 또한그의 정치적 자산이자 성장 배경이었다. 그는 광해군의 대외인식과 외교 정책에 대해 우호적 입장에 가까웠지만 절대적이고 일관된 지지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다른 신료들과 마찬가지로 對明義理라는 보편적 가치와 심성을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Abstract
This paper explores the process of political status change, including the household, personal connections, and career of Park Seung-jong(朴承宗), a famous servant during the reign of the King Gwanghaegun(光海君). It also considered the role and actions of Park Seung-jong(朴承宗), who was in charge of national defense and diplomacy in the latter half of the reign of the King Gwanghaegun(光海君). Park Seung-jong(朴承宗) emerged as the most powerful man in power in the second half of King Gwanghaegun(光海君)’s regime, filling the gap in power amid the trend of Yi I-chum(李爾瞻) and Yoo Hee-bun(柳希奮), who were influential figures in the regime, retreating together after a fierce political battle. King Gwanghaegun(光海君)'s trust and dependence on Park Seung-jong(朴承宗) increased even more amid the visible armed conflict between the Ming(明) and the Hugeum(後金). His political assets were also his renowned family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his amicable manners, his wide connections, his grandfather's status as a wife of crown prince, and his expert knowledge of defense and diplomatic affairs. Although he was close to a friendly stance on King Gwanghaegun(光海君)'s Perception of Foreign Affairs, he did not give absolute support. He was also a man of universal value and spirit called Daemyeongeuirie(對明義理), as were other sub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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