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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墓室壁畵和中國美術史硏究

The Frescos of Chinese Tombs and Chinese Art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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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과거의 중국미술사, 특히 회화사 연구에서는 그 문헌사료와 실물자료의 부족으로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였으나, 1950년대 이후 최근 50년간 고고학의 발굴성과로 인해 다량의 고대 미술사 자료를 확보하여, 이 분야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게 되었다. 그 결과 몇 가지 새롭게 인식하고 논의해야 할 문제들이 출현하였다. 현재, 한대의 묘실벽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알려진 한대 회화자료를 통하여 미술사연구를 진행할 때 가장 먼저 주지해야 할 것은 한대 묘실벽화는 한대인의 장례의식에서 필수적 요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대묘에서 벽화묘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미미하며, 묘 내에서 벽화가 차지하는 면적도 크지 않았다. 더욱 주의해야 할 것은 한대 묘실벽화는 피장자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아니었으며, 결코 한대 회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남북조시대의 묘실벽화는 먼저 한대와 큰 차이가 있으며, 동진시기에 이미 중국회화발전사상 일차적인 질적 비약이 있었다. 고개지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회화창작은 상층사회로 진입했으며, 전문적인 감상을 위한 회화창작이 나타났다. 남북조시대 후기의 묘실벽화는 이미 신분과 지위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변했다. 비록 한대에 비해 벽화의 질은 한층 높아졌지만, 여전히 묘실벽화가 당시 회화예술의 최고 수준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남북조시대 묘실벽화를 연구할 때, 일부 묘의 벽화와 회화사 저록에 나타난 어떤 화가를 직접 연관을 짓는 일이 있는데, 지금까지 문헌기록에서 동진남북조시기 화가들이 묘실 안에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닫힌 공간인 묘실에 묘장의례에 기초해 묘사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은 없으며, 또한 예술창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명화가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따라서, 확실한 근거없이 어느 묘실벽화가 어느 화가의 작품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무책임한 행위라 볼 수 있다. 다만, 어느 화가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점은 ‘粉本(밑그림)’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粉本에 의해 제작되어 천편일률적이거나 이를 약간 수정하여 그린 것으로 보이는 예들이 다수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粉本의 유행은 새로운 화풍의 신속한 전파와 영향력 확대를 촉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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