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代 北邊의 互市와 朝貢
明代北边互市和朝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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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중국의 대외무역체제에 대한 논의가 거의 전적으로 16세기 이후 동남 연해 지역을 대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반성하면서 북변에서 전개된 호시의 내용과 형식의 변화 및 그 논리를 살펴보았다. 우선 명대의 북변 호시는 이념적으로는 조공과 일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명조의 입장은 조공을 가급적 정치적 의례로 한정하고 경제적 교역은 배제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호시는 부탑화물을 관부가 수매하는 것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명초부터 이러한 이념은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영락제 시기를 이어 홍치제 시기에 비교적 널리 개설된 마시는 호시를 제한적으로 운영하고자 했던 명조의 정책이 성공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몽골의 교역 요구는 정통 연간 한 차례 고조되었지만, 가정 연간은 그 극성 시기에 해당하였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확대되는 호시 요구를 명조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모순이 군사적인 대결로 나타난 것이 가정 연간의 ‘北虜’ 현상이었다. 결국 융경5년(1571) 통공․호시를 통해 지금까지 견지해 온 북변 호시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북노’ 사태는 진정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융경5년의 호시가 전혀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교역 모델은 아니었다. 몽골과의 통공․호시가 이루어지기 3년 전인 융경2년(1586) 복건의 장주부 월항을 개방하는 조치가 선행되었다. 이것은 동남 연해 지역에서 극성하던 ‘남왜’ 현상에 대한 대응으로 이루어진 조치였다. 이것을 이와미 시게키는 16세기 이후 조공으로 수렴될 수 없는 외국과의 무역을 ‘抽分’을 통해 합법화한 결과 나타난 새로운 교역체제로서의 ‘호시’로 파악하였다. 하지만 ‘추분’을 통해 합법화된 ‘호시’는 이미 송․원 시대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조공으로 수렴될 수 없는 외국과의 무역이 새로운 국면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낸 명대의 조공 질서가 오히려 특수한 대외정책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명초부터 전개된 북변의 호시를 살펴보면, 일찍부터 명조는 조공과 관계없는 교역에 대한 요구에 계속해서 직면해왔다. 다만 16세기 이전에는 그것을 조공의 체제 안으로 수렴할 수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16세기 이후 동남 연해의 상황이 새로운 대응을 요구하는 체제의 변화를 몰고 온 유일한 배경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중국 대외무역체제에 대한 논의가 동남 연해를 중심으로 전개된 것일까? 우선 북변의 문제를 대외무역의 차원이 아닌 민족문제로 다루고자 하는 중국 학계의 시각도 그 영향이 적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16세기 이래 동남 연해와 해상에서 전개되었던 상업 발달이 유럽의 동아시아 진출과 맥을 같이 하면서 이것을 근대로 이어지는 역사 발전의 흐름이라고 이해한 결과라는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16세기 이래 강남을 중심으로 한 사회경제적 성장과 유럽인의 동아시아 진출이 당시 해상 무역 발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고, 이것이 융경2년 월항 개방과 청대 해관 설치로 이어지면서 근대를 매개하는 새로운 무역 질서로 상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북변 호시를 둘러싼 논의를 살펴보면, 그것은 동남 연해에서 전개된 籌海 논쟁과 본질적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융경5년 통공․호시의 결과 개설된 호시도 민간에 교역을 개방하고 관부에서 추분을 통해 교역을 관리함으로써 국가 재정에도 기여하는 것이었다. 호시 요구가 비단 16세기 이래에 한정된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중국의 대외무역체제 연구를 위해서 북변 호시의 실태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동남 연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해양 중심적인 연구 경향이 지양되고 남과 북, 해양과 대륙의 상황과 시각을 아우르며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출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Abstract
本论文不仅明确指出中国东南沿海地区的海上交易为中心的东亚交易秩序研究的倾向问题, 而且针对明代北边的互市问题, 强调了要兼顾海洋与大陆的观点. 明代的互市在观念上与历史上的朝贡制度, 是有着不可分割关系的一部分. 由于明朝向来把朝贡限定在政治仪礼范围内, 排斥经济交易, 因而互市只能限定为, 为官府购买并附带货物的行为. 但是, 一开始这种交易就难以贯彻这种理念. 尤其是明正统年间之后, 到嘉靖年间为止, 与蒙古的交易需求日增, 明朝基本无法控制, 致使出现"北虏"军事鼎立现象. 其实"南倭"现象的产生原因与其发展过程, 在本质上与其大同小异. 隆庆二年(1586), 开放福建漳州府月港措施, 实际上是先于隆慶五年(1571)蒙古通貢․互市的一种措施. 迄今为止, 以东南沿海地区的海外交易为中心的中国对外贸易体系的研究, 来源于以欧洲近代文明之路海洋为中心的历史观. 不仅如此, 16世纪以后对难以实行朝贡的对外贸易, 用"抽分"来合法化之后, 把它认定为新的交易体制"互市"的看法, 也存在相当的问题. 早在宋元时期, 不仅已经出现过用"抽分"合法化的"互市", 而且难以实行朝贡的对外贸易, 其实并不是崭新的局面, 实际上造成这种状况的明代朝贡秩序, 可谓是一种特殊的对外贸易政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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