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唐末五代における杭州と浙地方 -9-10世紀中港都市と河口域-

The Chang of Hangzhou Port City and Liangzhe Area in 9-10 Century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당말 오대 杭州와 兩浙 지방-910세기 중국 항만 도시와 河口域- 山崎 覺士 당대에 전당강의 수해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는 항주성 발전의 중요한 관건이었다. 당시 전당강의 유역은 吳山의 東쪽 기슭 근처까지였다. 먼저 沙河공사가 강구되었던 것도 오산 북쪽으로 전개하는 시가지의 성벽을 넘어서 潮水가 유입되었기 때문이었으며, 이런 수해가 도시 발전을 크게 저해했던 것은 분명하다. 백거이가 전당강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어 파도를 진정시켰다는 글은 자연에 대해서 어떠한 방도도 지니지 못했던 당시 항주성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또한 사하 공사에서 보이는 것처럼 항주성의 동쪽과 동북쪽의 모래땅은 광범위하게 육지화가 진행되고 있던 상태였고, 파도의 침심은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결국 오월 항만시설의 하나인 捍海塘은 전당강에 대한 결정적인 재해 대책으로 기대되었다. 오대 오월의 수도가 된 항주성은 큰 변모를 이루게 되었는데, 그 배경은 당시 동아시아 해역에서 성행하고 있었던 해상 무역의 장으로 전당강 하구역이 주목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상 교역을 국책으로 삼은 오월이 항주성에 항만시설을 설치하면서 항주는 전당강 하구역의 중핵 도시로 변모하였다. 이에 따라 전당강 하구에는 해상과 운하가 항주를 집결점으로 연결되었다. 송대 이후 항주성은 전당강 하구역의 중핵 도시로 군림하고, 남송의 帝都가 되었다. 본고는 오월의 항주성 건설의 가운데 어떠한 항만시설이 건설되었는가에 주목한다. 당시 항주성에 관한 사료는 극히 적지만, 그 가운데 성 안팎에 건립되었던 사원에 관해서는 하나로 정리한 것이 있다. 따라서 오월의 사원 건립의 특징에서 당시 항주성의 상황을 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 특징이 당말 浙西․浙東지방의 특성에서 생겨난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오월은 항주를 수도로, 월주를 副都로 하고, 지배 영역은 전당강 하구를 중심으로 하였다. 동지나해 교역권과 남지나해 교역권의 해상 여러 나라와 오월은 교통을 도모하였다. 해외와의 무역을 통해서 나라를 세우고, 해상에 패권을 도모하였던 오월은 수도 항주를 항만도시로 변모시켰다. 이것은 교역권을 배경으로 나라를 세웠던 오월의 성격이 그대로 수도에 반영되었던 결과이며, 동시에 수도로 되어 오월 영역(양절지방)의 중핵 도시로 승격되었다. 항주를 중심으로 동북의 운하 위에, 서남의 전당강 위에 사원의 건립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그 현상 때문이다. 오월은 수도 항주를 중심으로 각 도시의 구획 정비를 진행하였다. 항주에 錢江縣을 신설하고, 湖州에서 武康縣을, 睦州에서 桐廬縣을 수도 관할구로 편입하였다. 무강현은 운하 근방의 도시이며, 동려현은 전당강에서 부양으로 더 거슬러 올라간 지점의 도시이며, 여기서도 항주를 중심으로 운하와 전당강에 수도권을 확대시켰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소주에 吳江縣을 설치하고, 소주와 항주 사이의 운하에 위치하였던 가흥에 秀州를 신설하고, 가흥과 항주의 중간 지점에 있던 의화진을 崇德縣으로 승격시켰다. 게다가 해양선박이 오월에 도달할 때 창구였던 明州 甬江口의 望海鎭도 현으로 승격시켰다. 이런 여러 도시의 구획 정비는 항주를 중심으로 여러 주와 연계되어 진행된 것으로 항주를 집결점으로해서 해역과 강남운하, 전당강으로 유도된 兩浙의 諸州가 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항주는 오월의 수도를 경험하면서 항만도시로서의 여러 시설을 구비하고, 오월의 지배영역이었던 양절지방의 중핵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4)

  1. "杭州城池曁西湖歴史図説" (2000), 浙江人民出版社
  2. "唐末五代期における城郭の大規模化 華中 華南の場合" (1997), 同朋舎
  3. "呉越杭州城考", 42 (1995)
  4. "西湖遊?志餘"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