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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券番の朝鮮定着と日本芸妓の存在方式

Settlements of kenban in Chosun and existence method of gei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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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생과 권번을 다루는 많은 논의 속에서 한국권번은 제도적으로 일본권번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전제하지만, 그 이식경로나 일본권번의 영향 등을 도출해내는 연구는 거의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식민지라는 환경하에서 일본예기와 기생은 유사한 제도의 틀 속에서 동시대를 지낸 점을 감안할 때, 일본예기 및 일본권번 연구는 한국권번 연구의 범주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본 연구는 식민지조선에 일본의 예기 및 예기 사회의 기본구조라 할 수 있는 권번, 요리점, 오키야가 조선에 정착하는 과정을 살폈다. 그리고 조선에서 예기로서 활약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과 계약방식 등 예기의 존재방식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문헌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은 본 연구자가 실제 경성에 주재한 예기와의 인터뷰를 실시하여 문헌내용을 확인 및 보충하였다. 일본예기 및 관련사업자들은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특히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 시기에 집중적으로 조선으로 건너왔다. 1881년부터 전국 일본인거류지에 <貸座敷營業規則><芸娼妓取締規則><黴毒病院規則><黴毒調査規則>이 발포되어 행정적 관리가 시작되었고, 1905년 12월 당시, 미완숙된 형태이지만 권번, 오키야, 요리점 등이 이미 존재해 있었고, 예능사범과 악기관련업자도 있었다. 경성의 경우, 1899년 요정 「井門」이 개업한 이래 정세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요리점도 급증해 갔는데, 초기의 요리점은 二枚鑑札(예창기면허 둘 다 소지)가 많았고, 일본 국내와는 다르게 요리점 직속예기도 많았다. 예기의 계약기간 동안 주거생활의 공간이 되는 오키야는 1906년경 「淸水亭」이 처음 등장하지만, 조선기생사회에 주류로 정착되지는 않았다. 권번은 1907년에 「中券番」「東券番」이 생겨났지만 권번기능이 미약한 수준이었고, 1910년부터 1912년에 걸쳐 실시된 초대 조선총독 테라우치의 엄중한 풍기단속아래, 1911년 본격적인 사무기능과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재정비된 「京城券番」「中券番」이 설립되었다. 고급예기는 고용주가 일본국내에서 면접과 예능시험을 통해 직접 유치하며, 비교적 급이 낮은 예기는 직업알선업자를 통해 조달했다. 계약시에는 건강진단서, 신원보증서, 호적등본, 친권자의 인감증명서, 친권자의 승낙서, 차용증서, 예기업계약서가 필요한데, 실질적으로는 고용주로부터 거금을 차용하는 형태인 금전거래관계를 갖는다. 계약방식은 금액부담의 비율 및 변제방식에 따라 코가이(子育;年期養女/年期子育), 지마에(自前;衣裝自前/半自前/敷自前)로 나눠진다. 조선에서는 예기의 계약기간이 만5년 미만으로 제한되었으며, 계약만료까지 전액 갚는 것으로 계약이 종료된다. 예기가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오키야에서 2-3년의 견습기간을 보내는데, 예능교육을 포함하여 예기로서 필요한 전반적인 기초교육을 받는다. 오키야에서 생활하며 기예스승에게 사사를 받아 2-3년후 기예가 어느 정도 몸에 익었다고 판단되면 관할 경찰서에 등록 후 허가를 받고 예기에 입문한다. 그 후 오키야가 소속되어있는 권번의 일인이 되어, 권번의 예능교습을 받으며 예기업에 종사한다. 결과적으로 일본 예기가 조선에 건너온 배경에는 식민지개척 사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일본 예기사회의 기본 구도 즉 오키야, 요리점, 권번은 조선에도 정착되었다. 하지만 조선에서의 일본예기의 존재방식과 연관지어 볼 때 일본 국내와도 조선기생사회와도 다소 상이한 요소를 지닌 식민지형 정착이었다고 볼 수 있다.

Abstract

This paper studies the process of settlements of Geisha and Geisha business system in Chosun. Geisha business system includes high-class Korean/Japanese-style restaurant, Okiya(Geisha house agency), and Kenban(assignation office for Geisha). A series of procedure for settling in Chosun and an existence method of Geisha such as contract rules are investigated in the paper. Geisha’s moving from Japan to Chosun is closely related with the colonial administration in the backgrounds. Basic structure and existence method in Chosun are a little bit different from those in Japan. And the basic structure in the Geisha community made an influence to the existence method of Kisaeng who take an important role in traditional performance art. The management style of Kenban and high-class Korean/Japanese-style restaurant was settled in just like Japan. However, Okiya couldn’t be settled in Chosun and contract method of Kisaeng was different from that of Gei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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