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총독부 내무국 사회과의 교화 영화 정책 출현 배경에 관한 고찰
“Educational” films in colonial Chosun: an analysis of the background to films produced by the Society Department of the Home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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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는 조선 총독부 내무국 사회과의 활동사진반에서 사회교화와 사회시설을 보여주는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에 관해 고찰해 보았다. 활동사진반은 1920년 11월부터 조선의 사정을 내외에 선전할 것을 목적으로 정보위원회 산하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1924년 12월 내무국 사회과로 그 주관 부서가 변경되면서 사회사업 및 민중 교화 영화 제작에 주력하는 경향을 보였다. 일본의 문부성 보통학무국 제4과(1924년 사회교육과)에서는 사회교육을 주창하고 민중 교화에 영화 이용의 중요성을 인식하여1923년부터 문부성 자체 내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반포하게 된다. 이후 총독부의 내무국 사회과는 일본 중앙 관청의 영화 이용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어 활동을 전개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는 중앙 관청의 영화 정책에 바로미터를 두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왜 일본에서 사회교육이 주창되었으며, 민중오락인 활동사진이 어떻게 교화의 매체가 되었는지, 그리고 문부성은 어느 국가의 영화 정책을 참고로 하고자 하였는지, 마지막으로 이들을 총합하여 총독부의 활동사진반은 어떤 영화를 제작하였는지에 관해 살펴보았다.
Abstract
The Motion Picture Unit(MPU) of the Chosun colonial government was established in April 1920 and run under control of the Intelligence Committee(from November of 1920). After this Committee was discontinued in December 1924 the MPU was run by the Society Department of the Home Office. In this new position within the government the MPU gave higher priority to the production of “educational” films presenting social welfare institutions and films introducing improved farming practices. The current paper analyses the background to this reorientation of the colonial government’s film policies. It is shown that the policy changes in Chosun were inspired by action taken by the central government in Tokyo. In 1923 the Ministry of Culture(Monbusho) had established its own MPU with the objective to reduce the growing social tension and class strife through “educational” films. Through investigations of the impact of different forms of public entertainment the government had found that the film media was a very powerful tool which could be used for “educating” the people. This new knowledge was soon turned into action also in colonial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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