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전환기 문명의 분리와 중첩 - 유인석과 이기를 중심으로 -
Separation and Overlap of the Concept of Civilization at Modern Transformation Period in Joseon: Focusing on Yu Inseok and Yi 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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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근대 전환기 일본을 통해 유입된 서구적 문명 개념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지적 동요와 변화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1890년대 이후 조선에서 보편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후쿠자와 유키치 식의 문명개화의 관념은 중화와 문명을 등가로 여기며 문명을 단일한 이념으로 인식하던 조선 지식인들의 문명의식을 동요시켰다. 전통적 중화 관념으로부터 이탈한 문명 담론은 사실상 맥락과 의미를 달리 하는 서로 다른 문명‘들’간의 중첩과 교착 그리고 그로 인한 갈등을 초래했다. 이를 통해 전근대 지식인들은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한다. 하나는 문명에 시간성을 도입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문명의 주체를 근대적 국가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런 도전 앞에서 20세기 초 근대 전환기 지식인들 유학자들 가운데 중화와 문명을 분리하고 문명을 개화와 연결시켜 서구적 제도와 교육 수용을 새로운 문명의 요구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구한말 유학자 해학 이기는 일본에서 서구 문명을 경험한 뒤 중화와 문명을 분리하고 신학(新學)이라는 명분으로 서양 근대의 제도와 교육 체계를 수용하고자 했다. 이와 반대로 연해주에서 의병운동을 이끌었던 의암 유인석은 「우주문답」을 통해 중화 제국의 재건만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조선의 국권 수호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중화를 단순히 이념이 아니라 조선의 안위까지 책임질 중화제국의 공간적 현 실태로 고정하고자 한다. 그는 여전히 중화와 문명을 등가로 상상하며 전통적 문명 개념을 강화하고자 한다. 유인석에게 중화는 시간을 초월하는 초역사적 보편성이며, 중화의 실현 역시 근대적 국가가 아니라 중화 공동체의 문제가 된다. 유인석은 새로운 문명의 조건, 시간과 국가 모두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우주문답」에서 유인석이 재기한 질문을 문명 관념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이를 해학 이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이들의 답변을 비교함으로써 근대 전환기 유학자들의 문명 개념이 어떻게 분화되고 변화되어 갔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contemporary Joseon literati's intellectual ferment and changes occurred when they accepted Western concept of “civilization” through Japan at modern transformational period. The idea of enlightenment such as of Fukuzawa Yukichi福澤諭吉, started to circulate among Joseon literati after 1890’s, who had thought Sinocentrism was equivalent to civilization, fermented them. Some Confucian literati regarded acceptance of Western educational system as the needs of the new civilization by separating Sinocentrism from civilization and connecting civilization with enlightenment. One of the Confucian literati, Yi Gi李沂, tried to accept modern Western educational system in the name of New Studies 新學, separating Sinocentrism from civilization, after experiencing Western civilization in Japan, although he studied traditional Confucianism. In contrast, Yu Inseok柳麟錫, who led Korean volunteer corps in Primorye, Russia, claimed that reconstruction of Chinese Empire was the only way to guarantee the peace of East Asia and national sovereignty of Joseon, in his book Ujumundap宇宙問答, since he still thought that Sinocentrism was equivalent with civilization and did not change his traditional concept of civilization. This article classifies Yu Inseok’s questions in Ujumundap and applies those to both of them, Yu Inseok and Yi Gi, and then compares each answers, looking for how the concepts of civilization of Confucian literati at modern transformational period differentiated and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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