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장무>의 변이양상과 의미에 대한 연구
A study on 'Hangjang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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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방에서 생성된 공연물이 관객의 호응을 얻어 궁중에서 정재된 대표적인 공연물로 항장무를 제시할 수 있다. 항장무는 고종 계유년(癸酉, 1873)때 평안북도 宣川지방에서 雜劇의 형태로 연희되다가 궁중에 유입된 것으로 대사가 있는 舞劇이다. 항장무가 조선후기에 궁중정재로 편입되면서 공연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항장무와 비슷한 시기에 정재로 편입된 공연으로 선유락이 있다. 선유락은 이별의 정한을 노래하는 ‘배따라기’에 유유자적하며 부르던 ‘어부사’를 결합하여 사행 떠나는 장면을 극화한 것이다. 본고에서는 항장무가 전통적인 공연형태로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 현대의 연극적인 요소를 지닌 공연물로 변화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항장무와 선유락의 출발은 여타 공연물처럼 노래, 춤, 음악이 결합된 형식이었다. 이러한 공연물이 관객과 만나게 되면서, 관객의 요구를 받아들여 항장무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노래 대신에 대사를 강조하게 되었다. 반면에 선유락은 공연무대장치와 무용적인 요소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 항장무와 선유락은 음악과 무용이 분화하였고, 이러한 양식상의 변화는 전통적인 연희에서 연극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Abstract
As the representative performance that was locally generated and then polished at the royal court by means of good responses of audiences in the Choseon Dynasty, there was Hangjangmu. Hangjangmu is a dance play with dialogues that had been performed as a miscellaneous play at Seoncheon, Pyunganbuk-Do at the year of Gyeyu (1873) of King Gojong and then introduced into the royal court. As Hangjangmu was introduced as a court votive offering in the latter period of the Choseon Dynasty, there were new changes in the performance. As another performance being introduced as a votive offering in the similar period of time to Hangjangmu, there was Seonyurak. Seonyurak dramatized the scene of leaving Choseon for diplomatic purposes by combining the 'BaeTaRaKi' that was a song of sad mind of separation and the 'EoBuSa' that was sung being free from worldly cares. In this study, the researcher intended to clarify that Hangjangmu was not fixed as a traditional performance type but was changed as performances with the modern dramatic elements in the course of groping for new changes. And the researcher tried to clarify the fact concretely through comparison with Seonyurak. Hangjangmu and Seonyurak started as combination of songs, dances and music like other performances. As the result of contacting with audiences, these performances reflected their requests, and Hangjangmu became to emphasize dialogues instead of songs in order to deliver meaning concretely. On the contrary, Seonyurak emphasized performing stage settings and dancing elements. In the course, music and dance were differentiated in Hangjangmu and Seonyurak. And such changes of styles demonstrate the course of changing from traditional entertaining to a 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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