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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KCI 등재

「서사록(西徙錄)」과 「연계여유일기(燕薊旅遊日記)」에 나타난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현실 인식

A Study on Seokju Lee Sang-ryong's Reality Perceptions in Seosarok and Yeongyeyeoyuil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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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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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서사록」과 「연계여유일기」를 통하여 석주 이상룡의 현실 인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서사록」은 1911년 경북 안동에서 만주에 이르러 정착하는 과정을 담은 일기이며, 「연계여유일기」는 1920년 만주에서 북경으로 이동해 군사통일회의에 참석하고 북경을 유람한 내용을 담은 일기이다. 두 건의 일기와 그 기간에 창작한 한시를 분석하여 이상룡의 현실 인식을 조명하였다. 조선이 국망의 길에 들어서자 이상룡은 1911년 1월 온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이주하였다. 만주에 정착하면서 자치단체와 교육기관을 세우는 데 기여하며 독립운동의 기반을 닦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상룡은 「서사록」을 통하여 고구려사, 발해사, 신라사 등의 역사서를 사료로 제시하면서 역사 기록 오류에 대하여 비평하였다. 그 결과 단군을 중심으로 하는 사유를 통해 우리나라 강역의 외연을 한반도를 포함한 만주 전역으로 확장하여 해석하였고, 만주에 사는 이들을 같은 선조를 둔 종족으로 보는 동족 의식을 드러냈다. 또한, 「연계여유일기」에서도 1920년대 북경을 유람하며 멸망한 청나라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동일시하면서 동족 의식이 이어졌다. 이상룡은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동․서양 학문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분석한 융합의 논리를 내세웠다. 「서사록」에는 서양의 인물과 학설을 비평한 부분이 두드러지며, 「연계여유일기」에서는 서구화된 중국의 현실과 무조건적으로 새로운 풍조를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의 태도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러났다. 이러한 점은 이상룡이 전통적 화이론에서 탈피하여 서구 문명의 가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했다는 점을 시사하였다. 이상을 종합하여 볼 때, 이상룡은 확장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동․서양 학문을 융합한 논리로서 현실 문제를 극복하려 하였다. 「서사록」과 「연계여유일기」는 시․공간적 배경과 상황이 다른 일기이지만, 미세한 차이는 존재할 수 있으나 현실 인식과 문학적 대응 양상은 같은 맥락으로 유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study attempted to examine Seokju Lee Sang-ryong's perception of reality through Seosarok (西徙錄) and Yeongyeyeoyuilgi (燕薊旅遊日記). Seosarok is a diary that records the process of departing from Andong, Gyeongbuk in 1911, arriving in Manchuria, and settling down. Yeongyeyeoyuilgi is a diary that contains details of moving from Manchuria to Beijing in 1920, attending military unification talks, and touring Beijing. By analyzing two diaries and Chinese poems, Lee Sang-ryong's perception of reality was illuminated. Lee Sang-ryong moved to Manchuria with his entire family in January 1911. While living in Manchuria, he presented historical books such as the Goguryeosa (高句麗史), Balhaesa (渤海史), Sillasa (신라사) through Seosarok as historical materials and criticized errors in historical records. As a result, through Dangun-centric thinking, the territorial scope was interpreted as expanding to the entire Manchuria, including the Korean Peninsula, and a sense of homogeneity was revealed, viewing the people living in Manchuria as a people with the same ancestors. In addition, in Yeongyeyeoyuilgi, while touring Beijing in the 1920s, the sense of kinship continued as he identified his own situation with that of the fallen Qing Dynasty. In order to overcome this reality, he put forward the logic of convergence by comparing and analyzing the strengths and weaknesses of Eastern and Western studies. In Seosarok, there is a prominent part that criticizes Western figures and theories, and in Yeongyeyeoyuilgi, regret is revealed about the reality of Westernized China and the attitude of the younger generation that unconditionally accepts new trends. This suggests that he broke away from traditional “Sino-Barbarian Dichotomy (華夷論)” and partially recognized and accepted the values ​​of Western civilization. Considering the above, Lee Sang-ryong attempted to overcome real-world problems with a logic that combined Eastern and Western studies based on expanded historical awareness. Although Seosarok and Yeongyeyeoyuilgi are diaries with different temporal and spatial backgrounds and situations, it was confirmed that although there may be subtle differences, the perception of reality and literary response aspects were maintained in the same co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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