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당 유정에 대한 밀양 유림의 평가와 추모사업
The Confucian Scholars of Miryang evaluating and memorizing Yu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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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임진년 왜적에 의해 한양을 빼앗기고 임금이 의주로 피난하는 위기를맞이하여 불교계는 의승병을 일으켜 참전하게 된다. 연로한 청허당 휴정을대신해 실질적으로 의승병을 이끈 이는 사명당이었다. 임진왜란을 통해 많은 전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전쟁 후에는 일본으로 들어가 조일간의 강화를 이루고 끌려간 동포와 약탈해간 문화재를 송환하는 등의 활약을 했다. 사명당의 생가지인 밀양에는 춘추로 사명당을 享祀하는 表忠祠가 있다. 表忠이란 말 그대로 ‘충성을 드러냄’이며, 유교의 풍습을 따르고 있다. 忠과 孝와 節을 三綱이라 하여 대표적 人倫으로 삼는 유림에서는 충신과 효자와 열녀를 기리는 사당을 짓고 추모하는데 사명당을 충신으로 여겨 사당을 지은 것이다. 밀양은 조선시대 영남의 대표적인 儒鄕으로 임란이후 지역 士族들은 향촌의 안정과 질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17세기이후 밀양향교와 예림서원을 중심으로 서로 혈연관계를 맺으며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유생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밀양유림들이 승려인 사명당을 나라에 충성을 다한 충신으로 여기고 동향인으로 인식하여 표충사를 짓고 향사를 하고, 사명당을 추모하는각종 불사에 적극 동참했으며, 표충사 수호에도 앞장을 섰다. 사명당 추모사업은 중산리에 세거하는 平山 申氏 문중의 신명윤과 신응악 부자, 내진리에 세거하는 碧珍 李氏 문중의 이의룡과 이의한 형제 그리고 이의한의 아들인 이종검, 초동면에 세거하는 昌寧 曺氏 문중인 조하위등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영당비에 새겨진 7명의 유생가운데 손석관은 이의룡의 처사촌이고, 창녕의 성덕주는 신명윤의 처당숙이므로 인척관계로 인해 동참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향안」과 「밀주청금록」 등에 입록한 유림들로 평소 절친한 관계이기도 하다. 표충사 승려들은 표충사 창건 및 중창에 협조한 지역 유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며, 유림에서도 표충사가 영정사로 이전하기 전까지는표충사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왔다.
Abstract
In 1592, Hanyang was deprived by the Japanese invaders and the king Seonjo refuged. Yujeong took the place of aged Hujeong and led patriotic monk soldiers at the time of Hideyoshi's invasion of Korea. Yujeong distinguished himself during the war, and afterwards he did his best to repatriate plundered cultural assets and compatriots who had been dragged to Japan. In Miryang where Yujeong was born, there is a Pyochoongsa which memorize Yujeong in every spring and autumn. Pyochoong means 'express the loyalty' as it is. Miryang was a typical Confucian Scholar's hometown in the Joseon Dynasty, so after the Hideyoshi's invasion of Korea, local Confucian Scholars tried to rebuild stability and order of local societies. After 17th century, they formed blood relationships within themselves to solid their status as Confucian scholars centering around Miryang-hyanggyo and Yaerim-seowon. These Confucian scholars in Miryang considered Yujeong as a local loyalist. So they built the Pyochoongsa and performed a Confucian rite to memorize Yujeong. The names of 7 Confucian Scholars who lived in Mooanmyun and neighboring villages were engraved on the Yujeong's monument. They were descendants of a noble family and were relatives one another. Pyochoongsa's monks had a gratitude to local Confucian scholars who cooperated in establishing the Pyochoongsa and rebuilding it. And local Confucian scholars had continued supporting the Pyochoongsa until it moved to the temple Young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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