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紫雲 李中久(1851~1925)의 反日행적과 현실 한계 인식 ‑『李中久家 五代 古文書』를 중심으로‑

Jaun Yi Jung-gu’s Anti-Japanese Activities and Perception of the Limitation of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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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조선 말기, 경주 양동지역의 유학자 李中久는 동학농민운동과 일본군의 조선 무단 침입을 통해 조정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한계를 자각하다. 특히 일본군의 궁궐 장악 목도와 동학민들의 물건 약탈 경험은 그로 하여 금 李彦迪의 학문과 주자학에 매진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다. 하지만 일본의 노골적인 조선 침략 속에 이중구는 고뇌하는 지식인에서 점차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변모하 게 되었다. 그는 국채보상운동에 호응하여 경주향교 斷煙회사에 회장으로 취임하으며, 일본담판사로서 渡海 하라는 고종의 密旨를 받고 열렬히 부응하다. 또한 학교를 설립해 교육사업에 힘을 보탰으며, 의병장이나 독 립운동가들과 끊임없이 정보를 공유하고, 역사적 名臣이나 忠臣에 대한 추모사업에 동참하는 사업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이러한 활동은 조선이라는 국가와 경북이라는 지역의 역사적 근간을 기억하고, 자부 심을 고취시키며, 후손들에게 그 기풍을 계승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중구는 망국의 신민이 되었다. 현실적인 한계를 자각하며 그 는 근대의 지식인으로서, 문중의 어른으로서, 일본인에게 모욕당하지 않도록 중도를 걸으며 민족적 자존감과 근본을 지키려 하다. 이런 이중구의 행보와 의지는 연령·가문·지역을 초월한 많은 이에게 공감을 얻으며 ‘紫雲契’라는 모임을 통해 광복 이후까지 기억되었다.

Abstract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Confucian scholar Yi Jung-gu from Gyeongju realized his limitations as a bureaucrat following the Donghak Peasant Movement and the invasion of Korea by Qing and Japanese forces. Consequently, he returned to his hometown and devoted himself to Neo-Confucian studies, including the scholarship of his ancestor Yi Eon-jeok, in an effort to redeem the nation’s disgrace. As Japan’s invasion of Korea intensified, Yi Jung-gu transformed from a contemplative intellectual into an active one. He led the National Debt Repayment Movement in the Gyeongju area, attempted to travel to Japan to carry out a secret royal command from King Gojong, founded schools, and engaged in memorial projects for loyal subjects, actively participating in the Patriotic Enlightenment Movement. Despite these efforts, the Korean Empire eventually became a colony of the Japanese Empire, and Yi Jung-gu became a subject of a fallen nation. Nonetheless, as a modern intellectual and elder of his clan, he strived to preserve national pride and essence. Yi Jung-gu’s actions and will, transcending age, family lineage, and region, resonated with many people and were long remembered through a social group known as the Jau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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