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역병(疫病) 감염에 따른 가족 구성원의 대응 양상
Countermeasures of Family Members’ against Infection of Epidemics(疫病) in the Late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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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의는 조선시대 때 경상우도에 연고를 둔 함인재 정국채의 일문, 즉 영일정씨 지주사공파 일족이 직면했던 역병에의 감염 사태와 그에 따른 가족 구성원들의 대응 양상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일문의 경우 1715년에 정국채의 증조부․모 내외가 처음으로 천연두에 감염된 이래로, 1811년에 이르기까지 도합 7명의 환자가 발생한 끝에, 3명이 병사한 돌림병 수난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효율적인 논의 전개를 위한 방편상, 증조부 정홍적의 증손인 정국채를 중심 화자로 설정하는 이론적 조처를 취했다. 또한 정국채의 문집인 『함인재유고』에는 19세기를 전후로 하여 돌림병과 관련된 기록들을 일부 수록해 두고도 있어서, 해당 장면을 목격한 관찰자적 역할도 아울러 병행하게 된다. 이처럼 근 1세기 동안에 걸쳐서 지주사공파 일문이 감내했던 역병의 잔혹사를 검토해 본 결과, 이하의 몇 가지 특징적인 양상들을 포착하게 되었다. 그것은 첫째, 선대에서 후대로 갈수록 돌림병 감염에 대응하는 방식이 보다 합리적인 양상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가문 내에서 돌림병에 대한 체험이 누적됨에 따라 역병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과학적․경험적 안목에서 어느 정도 객관화했음을 시사해 준다. 둘째, 이처럼 이른바 경험적 병인론에로의 인식 전환이 완만하게 이루어지는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역병이 확산되는 고리를 차단하기 위한 격리에의 의지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감염된 환자가 부모인 경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부모․자식으로 맺어진 천륜의 관계에 따른 불가피한 양상처럼 보인다. 이 일문의 경우 선조인 포은 정몽주가 선보인 절의․성효로 대변되는 전래의 가풍도 다소 영향을 미쳤던 듯하다. 셋째, 역병에 걸린 부모가 병사한 이후에, 공히 심각한 트라우마를 앓았던 정황 또한 간과할 수 없는 특징에 해당한다. 한편 증조모의 연명을 청했던 조부 내외의 간절한 기도 행위와 함께, 1811년에 정국채가 보여준 자가 격리에 상응하는 조처란, 이 가문이 체험한 역병 수난사가 현재의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도 유익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도 있다.
Abstract
This manuscript introduces the infection of a contagious disease of the family of Jijusagongpa (知奏事公派) branch of Yeongil Jeong Clan(迎日鄭氏) that Haminjae(含忍齋) Jeong Guk-chae(鄭國采) belonged to and countermeasures of family members against the disease. The family has the history of suffering from epidemics that 3 family members died from epidemics until the year 1811 after having total 7 patients starting with Jeong Guk-chae‘s great-grandparents who were infected with smallpox(天然痘) in 1715.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brutal history of epidemics that the family had to cope with over about 100 years, First, carrying over to later generations, an evidence that they took more reasonable method of correspondence against contagious disease was found. The foregoing implies that the family saw through the mechanism of epidemics from a scientific perspective. Second, but nonetheless, it is also noted that will for isolation to prevent the epidemic from spreading was not displayed appropriately. Such a phenomenon was especially noticeable in case infected patients were parents. Third, this manuscript seized situation that they were sick with serious trauma after pestiferous patients died. Meanwhile, with a A mournful pray for great-grandmothers’ maintenance of a scanty existence, the measure corresponding to self-isolation taken by Jeong Guk-chae in 1811 and the history of suffering from epidemics that the family experienced provide useful implications for THE COVID-19 pandemic of the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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