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나전칠기 정책과 제작 연구
A Study of Policy and Production of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of Korea during the Japanese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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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공예 기법 중 하나인 나전공예는 옻칠 바탕에 패각류(具殼類)를 오려 붙여 시문하는 기법으로, 한국에서 특히 발전한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나전칠기 제작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지나며 꾸준히 이어져 왔고, 지금까지도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다른 전통공예와 마찬가지로 나전칠기도 근대기를 겪으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여타 전통 공예와는 다른 나전칠기만의 특이점이 있어 주목된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대부분의 전통 공예는 제작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과거로 회귀하는 등 전통이 단절되고 훼손된다. 하지만 나전칠기는 오히려 이전 시대 보다 생산량이 크게 늘고, 제작 방식의 발전적 개량도 이루어지며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다. 본고에서는 나전칠기가 어떤 배경에서 이러한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는지 동시대 다른 공예상황과 비교를 통해 탐구한다. 더불어 나전칠기의 제작과 소비, 그리고 유물의 유형을 살펴 일제강점기 나전칠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살핀다. 일제강점기 이후 총독부의 나전칠기 정책은 당시의 전반적인 공예 정책과 마찬가지로 원료의 조사·연구, 산업 확대, 수출품 개발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원료 이동과 장인에 대한 처우, 그리고 대량생산과 수출품으로서의 개량 정책에서 차이점이 드러난다. 이 정책들은 일제가 조선의 인적자원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제강점기 나전칠기의 제작은 경성의 미술품제작소와 통영의 나전칠기 주식회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외에도 장인들은 개별적으로, 혹은 공예사(工藝社)를 설립해 활동을 이어나갔다. 당시 나전칠기의 소비는 일본인과 조선인 상류층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현재 전해지는 일제강점기 나전칠기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왕실용, 관광 상품,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 수상작, 그 외 생활기물로 분류할 수 있다. 본고는 일제강점기 나전칠기 정책과 제작주체, 향유층, 그리고 조형적 특징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근대를 보는 기존의 시각을 넓혀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인식하고 회복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Abstract
One of the lacquer craft techniques,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craft, is cutting and pasting nacre on a lacquered base. This technique was developed particularly in Korea.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in Korea, which began to be produced from the Unified Silla Dynasty, has been steadily passed down through the Goryeo Dynasty and the Joseon Dynasty, and the tradition is still maintained. Like other traditional crafts,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also undergoes changes during the modern period. In this part, it is noteworthy for its uniqueness, which is different from other traditional crafts. Aft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most production structure of traditional crafts were suspended. Design of products were also reverted to the past. Therefore, the tradition was cut off and damaged. However, the production of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increases significantly compared to the previous era. The developmental improvement of the manufacturing method is made as well. It means that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has been industrialized. This study tried to find the background in which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came to show this characteristic through comparison with other craft situations. In addition,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of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as well as the types of artifacts, are examined in a new perspectiv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ince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government policy of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has followed the flow of research on raw materials, industry expansion, and export product development, just like the general craft policy at the time. Though, differences emerge in the movement of raw materials, treatment of craftsmen, and improvement policies for mass production and exports. These policies have in common that the Japanese imperialists believe in Joseon's human resources and actively utilize of the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production of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was developed mainly in Gyeongseong and Tongyeong. In addition, the craftsmen continued their activities either individually or by establishing a craft shop. At that time, consumption of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was aimed at the upper class of Japanese and some Koreans. Lacquerwares which presently handed dow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can be categorized into royal use, export use, tourism goods, works awarded by the Ministry of Crafts at the Joseon Art Exhibition, and other living articles. This study aims to contribute to recognizing and restoring the remnants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y broadening the existing view of the modern era through a comprehensive analysis of the lacquerware inlaid with mother-of-pearl polic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production subject, the consumer class, and the formative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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