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 북문지 일원 삼국시대 考古資料의 양상과 성격
The Patterns and Nature of Archeological Data of Three Kingdoms Period at the North gate Area of Mongchon Earthen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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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몽촌토성 북문지 일원에 대한 최근 발굴조사에서는 몽촌토성의 축조시점과 성격, 변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삼국시대 유구와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유구는 도로와 수혈유구·건물지 등이 일정한 공간 분포상의 정형성을 띠며 확인되었다. 즉, 도로는 격자상으로 구획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수혈유구와 건물지 등은 북문지 내측에서 북서쪽으로 치우친 지점의 도로로 둘러싸인 공간에 분포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또한 주목되는 부분은 백제 漢城이 고구려에 의해 함락된 이후의 시기에 고구려가 백제의 유구를 修改築하여 사용하거나 폐기된 백제 유구 위에 성토대지를 조성하고 수혈유구, 건물지 등을 시설하여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유구의 양상은 한성백제가 멸망한 이후에도 고구려가 몽촌토성을 일정기간 동안 점유하고 활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유물상의 특징은 3가지 점에서 몽촌토성의 북서쪽에 인접하여 위치한 풍납동토성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 원삼국기의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편이 거의 확인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둘째, 삼국시대 문화층에서 출토되는 백제 토기는 한성 Ⅰ기에 해당하는 4세기 중엽 이전의 것들은 극히 드물며, 대부분 4세기 후반~5세기대의 한성 Ⅱ기에 해당하고 있다. 셋째, 풍납동토성에서는 고구려 유물의 출토 빈도가 극히 낮은데 비하여 몽촌토성에서는 1980년대 발굴조사에서도 확인된 바와 같이 고구려 토기·철촉 등의 유물이 상대적으로 출토빈도가 높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유구와 유물의 양상은 몽촌토성이 축조된 지역은 원삼국기~한성Ⅰ기에는 거의 활용되지 않다가 4세기 중엽 이후 몽촌토성이 축조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판단되며, 고구려가 백제 한성을 함락한 이후에도 몽촌토성을 일정시기 동안 남방진출의 중심기지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몽촌토성 북서벽 구간의 성벽 외측 하단에 대한 조사에서는 기존에 목책으로 인식되었던 柱穴이 土城의 축조와 관련된 협판을 고정하는 목주의 주혈일 가능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성벽에서 출토된 유물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를 고려할 때, 조사지점의 성벽 축조시점은 4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된다.
Abstract
The recent excavation at the North gate area of Mongchon Earthen Fortress produced relics and artifacts from the period of Three Kingdoms to shed light on the construction time, nature, and changes of the Fortress. As for the relics from the period of Three Kingdoms, life relics, including roads, pit relics and building sites, have shown a fixed distribution in certain spaces. It is noteworthy that Goguryeo renovated and used relics left by Baekje and established embankment land on top of relics discarded by Baekje to use such facilities as pit relics and building sites after it took Hanseong from Baekje. These relic patterns indicate that Goguryeo occupied and utilized the Fortress for a certain amount of time even after the fall of Hanseong Baekje. Its artifact characteristics have differences from those of Pungnap Earthen Fortress adjacent to it in the northwest in three aspects: first, there was almost no hard plain pottery and pottery of Proto-Three Kingdoms; second, most of Baekje pottery excavated in the cultural layer of Three Kingdoms fell in Hanseong Period II between the latter half of the fourth century to the fifth century with only a few pieces before Hanseong Period I in the middle fourth century; and third, unlike the Pungnap Earthen Fortress where the excavation frequency of Goguryeo artifacts was extremely low, the Fortress recorded a relatively higher excavation frequency of Goguryeo artifacts including pottery and iron arrowheads as demonstrated in the excavation projects in the 1980s. These relic and artifact patterns indicate that the area where the Fortress was built was hardly used from the period of Proto-Three Kingdoms to Hanseong Period I and was developed in full scale with the construction of the Fortress in the middle fourth century. It is estimated that Goguryeo made use of the Fortress as its central base for the management and rule of its southern territory for a while even after it took Hanseong(漢城) of Baekje. An examination into the external bottom of the northwestern wall section in the Fortress raises a good possibility that the column pits were made to support wood board for the Fortress. Based on the artifacts excavated in the fortress walls and their radiocarbon dating results, it is estimated that the fortress wall, at the point of survey, was built in the latter half of the four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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