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베지온의 공주 교촌리 벽돌무덤 연구
A Study on Gyochon-ri Brick Tombs in Gongju by Karubej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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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공주 교촌리의 벽돌무덤을 처음으로 발견한 가루베지온(輕部慈恩)은 교촌리 2호분을 이장(移葬)한 폐고분 으로, 그리고 3호분을 미완성 고분으로 인식하였다. 아울러 두 고분이 그렇게 된 것은 나성과의 관계 때문이 라고 보았다. 나성이 밖으로 확대됨에 따라 이장하거나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루베지온의 주장과 달리 웅진기에는 나성이 없었다. 교촌리 2호분이 나성 때문에 이장하였다 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교촌리 2호분은 무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3호분은 미완성 고분일 가능성이 높다. 교촌리 3호분은 묘실의 바닥이 연도의 바닥보다 한단 낮고, 바닥면에 전면관대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특 징은 무령왕릉이나 부여 왕릉원의 중하총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교촌리 3호분은 무령왕릉 을 뒤이어 왕릉을 축조하려다 중도에 포기한 것으로 판단된다. 천정부의 아치를 만드는데 실패하였기 때문 이다.
Abstract
Karubejion, the first discovered to Gyochon-ri brick tombs in Gongju, recognized Gyochon-ri brick tombs No.2 was discarded tomb, and No.3 was incompleted tomb. In addition he also recognized No.2 and No.3 was remained incompleted tombs by naseong wall. In other words No.2 and No.3 was remained incompleted, because naseong wall was enlarged. By the way naseong wall was nonexistented in woongjin period. Therefore we can’t admit Karubejion’s recognization. Actually Gyochon-ri brick tombs No.2 was not tomb. We think it is altar in woongjin period. And we think Gyochon-ri brick tombs No.3 was incompleted tomb. A burial chamber floor of Gyochon-ri brick tombs No.3 is lower than entrance floor. And there was istalled wooden coffin prop in burial chamber floor. These chracteristics were seen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and Baekje Royal Tombs Park No.2. Therefore Gyochon-ri brick tombs No.3 is abandoned tomb that was constructed brick tomb. Because Gyochon-ri brick tombs No.3 failed to make arch cei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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