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백제 한성기 문자 수용과 중국계 지식인

The Acceptance of Letters and Chinese Intellectuals of Hanseong Baekje Period

0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백제 한성기 문자는 기록과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백제의 전성기였다고 하는 근초고왕 시기부터 한성기 백제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는 문자 기록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에서 근초고왕 시기에는 문자가 이미 수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칠지도의 전파, 개로왕 시기 중국으로의 표문 발송은 문자가 수용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성기 문자는 언제 수용된 것인가? 현재의 자료로는 한성기 문자가 언제 수용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문자가 왜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중국, 나아가 서아시아의 문자 수용 양상을 살펴보면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우선 문자는 그림문자에서 문자로 발전해 왔다. 문자의 발전은 문자의 사용이 널리 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사용했기에 좀 더 간결하고 정형화된 문자로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 서아시아와 중국 주나라 초기 사람들의 문자 사용을 살펴보면 신과의 대화에 사용되던 문자가 인간의 대화 수단으로 변했음이 확인된다. 백제에서도 한성기 초기에는 단편적인 글자 혹은 부호가 제사유구에서 확인된다는 점에서 신과의 대화 수단으로 문자가 수용되고 사용되다, 국가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대화수단으로 문자가 전용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백제 한성기 문자의 수용이 언제 왜 이루어졌는지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 실마리는 남겨진 자료와 주변국의 문자 수용 및 확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Letters Hanseong Baekje Period is difficult to identify because there are few records and remaining data. However, it can be said that characters have already been accepted in the King Geunchogo period, given that text records that give a glimpse of Hanseong Baekje Period's activities have been confirmed from the King Geunchogo period, which was said to have been in Baekje's heyday. This is because the spread of The seven-pronged sword(七⽀刀) and sending of diplomatic document to China during the King Gaero period were impossible if the letters had not been accepted. Then, when were the Letters Hanseong Baekje Period accepted? With the current data, it is not known when the Hanseong Baekje Period was accepted. However, as to the reason why Letters came in, it seems that we can get a clue by looking at the letters acceptance patterns in China and even around the world. First of all, Letters has developed from picture Letters to Letters. The development of Letters means that the use of Letters has become widespread. This is because many people used letters, so it has changed into a more concise and standardized letter. Looking at the use of Letters by people in West Asia and early China in the past, it can be confirmed that Letters, which was used for conversation with God, has been transformed into a means of human conversation. Even in Baekje, in the early days of Hanseong Peiod, letters were accepted and used as a means of communication with God in that fragmentary letters or signs were identified in the ritual sites, and as the state developed, letters spread as a means of human conversation. It is still difficult to answer when and why The Acceptance of Letters of Hanseong Baekje Period was achieved. However, the clue will be confirmed through the marginal state's the Acceptance of Letters and Diffusion in neighboring countries.

참고문헌 (57)

  1. 權五榮, "風納土城Ⅳ-慶堂地區 9號 遺構에 대한 發掘報告-", 한신대학교 박물관, ~ (2004)
  2. 風納土城 Ⅵ-慶堂地區 中層 101號 遺構에 대한 報告-, "權五榮", 국립문화재연구소·한신대학교박물관, ~ (2005)
  3. 국립경주박물관, "우물에 빠진 통일신라 동물들", ~ (2011)
  4. 국립 문화재연구소, "風納土城-잃어버린 '王都'를 찾아서-" (2002), 서울역사박물관
  5. 임효재, "아차산 시루봉 보루", 서울대학교 박물관, ~ (2002)
  6. 정동준, "동아시아 속의 백제 정치제도" (2013), 일지사
  7. 千寬宇, "韓國上古史의 爭點" (1975), ⼀潮閣
  8. 권덕영, "백제 유민 禰氏 ⼀族 묘지명에 대한 斷想", 史學硏究, 105 (2012)
  9. ⾦榮官, "중국 發⾒ 百濟 遺⺠ 祢氏 家門 墓誌銘 검토", 新羅史學報, 24 (2012)
  10. ⾦英心, "5~6세기 百濟의 地方統治體制", 韓國史論, 22 (1990)
  11. 김영심, "七⽀刀의 성격과 제작배경", 한국고대사연구, 69 (2013)
  12. 김경일, "殷商 ⾦文을 통해 본 中國 銘文의 기원", 語文學硏究, 2 (1994)
  13. 김영명,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2013)
  14. 김영심, "墓誌銘과 문헌자료를 통해 본 백제멸망 전후 禰氏의 활동", 歷史學硏究, 52 (2013)
  15. 김정열, "산 자를 위한 죽은 이의 그릇", 美術史學, 27 (2013)
  16. ⾦昌錫, "한성기 백제의 국가제사 체계와 변화 양상-풍납토성 경당지구 44호, 9호 유구의 성격 검토를 중심으로-", 서울학연구, 22 (2004)
  17. ⾦昌錫, "中國系 인물의 百濟 유입과 활동 양상", 역사문화연구, 60 (2016)
  18. 李純根, "新羅時代 姓氏取得과 그 意味", 韓國史論, 6 (1980)
  19. 李永植, "五世紀 倭國王의 爵號에 보이는 韓南部諸國名의 意味", 史叢, 34
  20. 문동석, "풍납토성 출토"大夫"銘에 대하여", 百濟硏究, 36 (2002)
  21. 하남 미사리 원삼국~한성백제기 취락과 주거 연구, "박경신", ~, pp.하남 역사 총서 3 (2021)
  22. 박대재, "낙랑고고학개론" (2014)
  23. 백길남, "4~5세기 百濟의 중국系 流移⺠의 수용과 太守號", 東方學志, 172 (2015)
  24. 三上喜孝, "일본 출토 고대 목간-9세기 의료시설에 관한 목간들", 木簡과 文字, 16 (2016)
  25. 신희권, "風納土城 출토 文字와 符號 探論", 韓國古代史探究, 15 (2013)
  26. 신희권, "백제의 문자 생활과 관직, 풍납토성에서 발견된 문자와 부호, 금석문으로 백제를 읽다", ~ (2015)
  27. 梁起錫, "五世紀 百濟의 王·侯·太守制에 대하여", 史學硏究, 38 (1984)
  28. 鈴木靖⺠, "古代 東亞細亞와 百濟" (2003)
  29. 여호규, "고구려 유적의 ‘井’자 출토 현황과 그 의미, 東아시아 古代의 呪術과文字", 第3回 韓·中·日 木簡硏究 國際學術大會 (2024)
  30. 오택현, "古代 國家의 姓氏 受容과 變遷", 新羅文化, 55 (2020)
  31. 오택현, "七⽀刀 再判讀을 통해 본 百濟와 倭", 한국고대사연구, 101 (2021)
  32. 오택현, "論語 木簡을 통해 본 東아시아 論語 傳播", 민족문화, 60 (2022)
  33. 오택현, "평양 정백동·정오동 출토 낙랑 문자자료", 木簡과 文字, 29 (2022)
  34. 윤용구, "새로 발견된 樂浪木簡", 한국고대사연구, 46 (2007)
  35. 윤용구, "百濟의 對外交涉" (2007),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36. 이근우, "백제의 문화와 생활" (2007)
  37. 李道學, "「禰寔進墓誌銘」을 통해 본 百濟 禰氏 家門", 전통문화논총, 5 (2007)
  38. 이여름, "4~5세기 백제 ‘이주귀족(移住貴族)’의 정착과 활동", 역사와 현실, 108 (2018)
  39. 장미애, "4~6세기 백제에서의 중국계 이주민의 정착과 활동", 역사와 현실, 117 (2020)
  40. 鄭載潤, "熊津·泗沘時代 百濟의 地方統治體制", 韓國上古史學報, 10 (1992)
  41. 정재윤, "중국계 백제관료에 대한 고찰", 史叢, 77 (2012)
  42. 曺凡煥, "중국인 유이민의 백제 귀화와 정착 과정에 대한 검토", 韓國古代史探究, 19 (2015)
  43. 주보돈, "百濟 七⽀刀의 의미", 韓國古代史硏究, 62 (2011)
  44. 최상기, "「禰軍 墓誌」의 연구 동향과 전망", 木簡과 文字, 12 (2014)
  45. Phạm Lê Huy, "베트남의 10세기 이전 石碑에 대하여", 木簡과 文字, 18 (2017)
  46. 이여름, "4~5세기 백제 ‘移住貴族’의 정착과 활동", 석사, pp.2017
  47. 안성진, "百濟 漢城期 對中關係 硏究", 박사, pp.2019
  48. 江頭廣, "姓考-周代の家族制度" (1970), 風間書房
  49. ⾼島英之, "古代出土文字資料の硏究" (2000), 東京堂出版
  50. ⻄嶋定⽣, "古代東アジア世界と日本" (2000), 岩波書店
  51. 坂元義種, "古代東アジアの日本と朝鮮" (1978), 吉川弘文館
  52. ⻄嶋定⽣, "岩波講座 世界歷史4-古代4" (1973), 岩波書店
  53. 尾形勇, "東アジアにおける社會と習俗" (1984)
  54. B. R. Foster, "Wisedom and the Gods in Ancient Mesopotamia", Orientalia Nova Series, 43 (1974)
  55. P. -A. Beaulieu, "World Antiquarianism - Comparative Perspectives" (2013), Gerry Publications
  56. P. Villard, "Dictionnaire de la Civilisation Mésopotamienne" (2000), Bouquins
  57. W. W. Hallo, "Antediluvian Cities", Journal of Cuneiform Studies, 23 (1971)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2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