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왕세자 책봉례冊封禮의 변천과 특징
Changes in and Characteristics of the Crowning of the Prince Ceremony in the Early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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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421년(세종 3)의 책봉례는 『세종실록오례世宗實錄五禮』와 비교하여 큰 차이가 있어, 그 이전부터 행했던 전례를 대체로 따르고 종합했다고 보여진다. 「왕세자조왕비의王世子朝王妃儀」와 「전하회군신의殿下會群臣儀」는 처음 마련되었다. 1421년의 「책봉례」와 「알묘례謁廟禮」는 국왕과 세자의 중심이어서 『세종실록오례』에는 참여하는 백관, 집사관, 국왕의 근시, 세자 소속 관원 등 역할이 의주에 대폭 들어갔다. 또 『세종실록오례』의 「조왕비의」에 왕세자 인장 내용이 추가되었으며, 국왕과 왕비에 대한 용어가 대등해져 갔다. 1457년(세조 3) 책봉례는 「반교頒敎」와 「세자진사은전世子進謝恩箋」 의절을 행한 면에서 『세종실록오례』가 아닌 그 이전에 행했던 전례를 따랐고, 세부 절차는 『세종실록오례』를 따랐으며, 「왕세자조왕비의」와 「백관하왕비의」의 음악 연주와 「왕세자수하의」의 하장賀狀을 읽는 절차는 특별한 사례였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책봉례는 『세종실록오례』를 따랐다. 『세종실록오례』에 오류로 보이는 위차의 방향이나, 소주로 처리된 음악 연주 절차 등의 오류를 바로잡았고, 호위지관·근시·집사관 등을 일일이 거론하지 않았고 간략히 서술하였다. 또 군사를 세울 때 ‘견서례見序例’로 처리하여 간략하게 서술하되 부족함이 없이 제정하였다. 『세종실록오례』와 『국조오례의』의 책봉례에는 「반교」 의절이 없었지만, 문종 대 이후 모든 책봉 때 「반사頒赦」가 있었다. 「반교」를 행할 근거는 『세종실록오례』와 『국조오례의』에 「교서반강의敎書頒降儀」로 추정하였다. 「백관진하」와 「반교」가 같은 날 행해진 경우 「반교」를 먼저 행하고, 뒤에 「백관진하」를 행하였지만, 1455년(단종 3)과 1483년(성종 15)에는 임금이 다시 외정으로 들어오는 상황이어서 「백관진하」 이후 「반교」가 행해졌다. 『세종실록오례』에 없는 「세자진사은전」은 누락이기 보다는 어린 나이에 책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아서 제외했을 수 있다고 보았다.
Abstract
The three years of King Sejong's reign generally followed and synthesized the precedents that had been done before that. First, a ceremony to meet the queen and a feast for the king were arranged. As the three-year ceremony of King Sejong was the center of the king and the crown prince, other people's contents were greatly added to the Sejong Sillok Orye. In addition, the crown prince's seal was added to the ceremony to meet the queen of the Sejong Sillok Orye, and the terms for the king and queen became equal. Several ceremonies held in the third year of King Sejo's reign followed the established precedents, and detailed procedures followed the Sejong Sillok Orye. The playing of court music at the queen's ceremony and the reading of congratulatory messages to the crown prince were the special examples. Gukjo Oryeui followed the Sejong Sillok Orye, not the third year of King Sejo. There was no ceremony to promulgate the textbook at the service of the Sejong Sillok Orye or the Gukjo Oryeui, but after the reign of King Munjong, it was carried out at every service. In normal times, the white officer gave a wedding ceremony after first spreading the school book, but the order changed when the king came back to foreign affairs. The reason why the crown prince's consciousness to post thank you is not in the Sejong Sillok Orye was that it was not appropriate to take it away at a young age rather than an o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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