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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月川學團과 禮安地域社會의 再建

Reconstruction of Weolchun School Ties and Yean Community in the early years of the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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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예안현 지역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질서의 모색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예안지역 사회의 재건을 주도하였던 것은 월천 조목과 그의 문인집단이었다. 조목은 퇴계 이황의 高弟로 예안지역을 대표하는 문인이었다. 조목은 15세(1538년)에 처음 퇴계의 문하에 들어 이황이 서거하는 1570년까지 한결 같이 퇴계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면서 훈도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황이 주도하는 『주자서절요』 편찬에 편집․교열자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이황과의 『심경부주』 토론에서 적극적인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예안지역 퇴계 문인들 사이에서 주목할 만한 학자로 인식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목 자신은 직접 의병에 참전하지는 못하였으나, 동문 김부륜과 더불어 병량을 모집하는 등 의병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조목의 문인 중 상당수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전후 조목은 임진왜란이 종식되자 바로 『퇴계집』판각에 착수하여 1600년 문집을 출간하였고, 이는 퇴계의 적전으로서의 자리를 굳히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향촌에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학문적 명성을 굳히게 되었고, 문인들의 임진왜란 당시 의병 활동은 전쟁 종식 후 월천문인들이 예안지역의 향촌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전후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사족의 결집을 도모하였다. 이들은 이황이 주장한 것과 같이 서원이 담당해야 할 임무를 학문의 창달뿐만 아니라 ‘향촌의 교화’라는 사림들의 정치적 목적까지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서원은 강학과 더불어 당시 사림들이 꿈꾸었던 향촌 자치공동체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향촌 공동체의 형성을 지향하였으며, 향약의 시행도 동시에 추진하였다. 예안에서 향약의 시행은 洞約의 실시와 같이 추진되었다. 경상도의 다른 지역에서도 향교․서원의 중건 등과 아울러 향약의 시행이 임진왜란 이후 활발하였다는 것은 당시 경상도 지역의 공통적인 과제가 동일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안현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주도한 세력들이 바로 조목의 문인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예안지역 사회에서 이들의 주된 재건의 목표가 이황이 처음 제창하고, 조목이 수용한 예교에 입각한 지역 공동체의 재건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Abstract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Yean-hyun area tried to recover the wounds of war and seek new social order. Groups who had led social reconstruction of Yean area were Weolchun(月川) Jomok(趙穆) and his literary people. Jomok, the foremost pupil of Toegye Lee Hyang, was one of the prominent scholars in Yean areas. Jomok became a pupil of Lee Hwang at the age of fifteen in 1538. Since then he had followed continuously the teaching of Lee Hwang until the death of Lee in 1570. Jomok also took major parts in compiling of Lee’s 『Jujaseojeolyo朱子書節要』as an editor. In particular, Jomok draw attention among the scholars who followed Toegye in the area of Yean by debating about 『Simkyungbujoo心經附註』 with Lee Hwang. At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Jomok did not participate in voluntary people’s army but supported actively the army with Kim Buryun raising provision for voluntary peoples’s army. A number of Jomok’s pupils took part in voluntary people’s army at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Right after the war, Jomok started engraving of 『Toegyejib』and published the literary compilation in 1600, which strengthened his position as a apostile of Toegye. He also gained a scholarly reputation through activities at the level of country villages. The works of voluntary people’s army at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provided an important opportunity to take the initiative to scholars uner Wolchun. They attempted to bring together local gentry in and around Dosan Seowon. The scholars regarded duties of seowon as both scholarly promotion and ‘enlightenment of country villages(鄕村)’ that was political purposes of Salim(士林). Hence, they thought seowon had to be in pursued not only the establishment of country villages but also the implementation of Hyangyak as the base of Dosan seowon. The implementation of Hyangyak(鄕約) in Yean was pursued with Dongyak. The fact that was the implementation of hyangyak and reconstruction of hanggyo(鄕校)ㆍseowon(書院) had been revitalized in the other areas of Kyungsang-do(慶尙道) after war shows that tasks of Kyungsang-do areas were common at that time. Powers leading the reconstructions in Yeanhyun(禮安縣) were the scholar groups under Jomok. It means that the main goal of reconstruction in Yean was rebuilding of community grounded on proprieties and edification which Lee Hyang had suggested first and Jomok accepted ac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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