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동아일보』의 인적 구성과 변동
Dong-A Ilbo in 1930s: Organization and Trans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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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공적 공간에서 『동아일보』는 제한적이나마 당시 지식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합법적 공론장으로 기능하는 한편, 언론이 지닌 사회비판적 기능을통해 그 주도세력들이 조선 내에서 나름의 정치적 역량을 확보하고 행사하는 창구 역할을 수행했다. 다만 그러한 역할은 총독부의 검열체제 아래에 기능하는 것이었으며, 상업화된 회사조직으로서의 경영상 문제와 회사 재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유치, 독자확보 등의 문제도 논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로서 존재하였다. 이러한 당시의 시대적 조건과 더불어 인적 구성도 논조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 요소였는데, 『동아일보』의 내부 인적구성은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거나 중앙학교, 와세다를 중심으로 한 학맥을 공유하는 이들이 중심이 되었다. 특히 김성수⋅송진우를 중심으로 한 자본⋅경영진이 강고한 주도권을 유지했으며, 경성방직, 중앙학교, 보성전문의 입장이 논조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다만 사설의 필진⋅편집진의 경우 자본⋅경영진과는 주된 활동단체나 사상적 입장을달리하는 인물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1930년대 초반(1930-1933)에는 이전부터 『동아일보』에서 활동하며 자본⋅경영진과 입장을 공유했던 인물들과 더불어 수양동우회계열이 함께 그 중심축을 이루고 있었으며, 일부 민족주의 좌파, 사회주의계열의 인물들도가담하고 있었다. 이후 1933년을 전후로 수양동우회계열이 『동아일보』를 이탈하면서이들의 사내 입지는 다소 확장되었는데, 이는 곧 사설에도 이들의 입장이 반영될 여지가커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자본⋅경영진의 입장을 대변하는 필진들과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진적인필진의 공존은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인한 인적 변동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그러나 중일전쟁과 더불어 강화된 일제의 전시 파시즘 체제 아래에서 이들의 사상적 입장차이는 체제순응적 전쟁협력 논리로 합류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식민지적 조건 아래 변용, 굴절, 전환 등의 과정을 거친 이러한 지식인층의 논리들은 이후 해방과 함께 다시한번 일대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Abstract
In the public space of the colonial Chosun (Korea) in the 1930s, the Dong-A Ilbo (Oriental Daily News) provided a legal space where intellectuals could express their thoughts. Through Dong-A Ilbo’s role as a social criticism, leaders of the company tried to exert a certain amount of political influence in the colonial Chosun. Such a role, however, was only possible under the censorship of the imperialist government. Also as a commercialized newspaper, concern for a profit and issue such as attracting advertiser and subscriber had a certain influence on the tone of the press. With the circumstances of the 1930s, the organization of its members also influenced the tone of press. Members of the Dong-A Ilbo’s leading group was either consist of landowner class of the Jeolla province (Jeolla-do) or shared an alumni’s connection of the Choongang school in seoul or Waseda in Tokyo. As Kim Sung-soo the major shareholder and Song Jin-woo the president were two core figure of the company, interest of their establishments so called “Kim’s Konzern”, such as Kyungsung Textile CO. ltd, Choongang School, and Boseong College were significantly affecting the tone of the editorials. Some of editorial writers and editors, however, had different ideological views from the leading group including major shareholders and executives. In the early 1930s (1930-1933), the editorial writers and editors consisted of three major groups: senior fixtures, so to speak, who had been working in Dong-A Ilbo for a while, and the members of Suyangdonguhoe, finally a group of left-wing nationalists and socialists. The senior and suyangdonguhoe group were leading the tone of the editorials. In 1933, as most of the Suyangdonguhoe group moved to The Chosun Ilbo, the leftist group gained more leverage and their thoughts were reflected in the editorial more than before. The coexistence of Dong-A Ilbo’s leading group (including the senior group) and the relatively radical writers of leftist group maintained for some time (1937-1940), even after the change of personnels caused by the erasure of National flag of Japan (called iljanggi) in 1936. Under the Japanese fascist system, however, their ideologic differences were forced to merged into the wartime cooperation discourse. Their opinion, which had undergone a series of transformation have faced a turning-point again with liberation of the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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