芝山 曺好益과 永川學脈
Jisan Jo Ho-ik and Yeongcheon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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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지산 조호익(1545~1609)은 31세 때 경상도사(慶尙都事)인 최황(崔滉)으로부터 무고를 당하여 17년간 평안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문풍(文風)을 진작시킨 공으로 선조(宣祖)로부터 관서부자(關西夫子) 어필(御筆)을 받았다. 이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어 의병을 모집하고 의병활동을 하여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영천에서 문인들을 양성, 남과 북에서 지산학파를 양성하였다. 지산의 교육적 특성은 간절함이 담긴 교육이었음이 문인들이 지은 행장(行狀)이나 제문(祭文) 등에 보이며 각자의 능력에 맞는 교육을 통해 진일보시켰다. 더불어 자신이 성현의 법도대로 행하여 안팎이 차이가 없었고 평상시나 위험할 때도 한결같았음에 문인들이 스승을 더 없이 존경하여 생존 시에 가장 많은 학단(學團)을 형성하였다.
Abstract
Jisan Jo Ho-ik(1545~1609) was falsely accused by Choi Hwang, a Gyeongsang provincial governor, at the age of 31 and lived in exile in Pyeongan-do for 17 years. He received the appeal of Guanso Buja(關西夫子) from Seonjo(宣祖) for his contribution to training his disciples and boosting Munpung here. Later, when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broke out in 1592, he was ordained to the Uigeumbudosa(義禁府都事) Temple, recruited righteous army soldiers, and engaged in righteous army activities, and was listed as the first place in Seonmuwonjonggongsin(宣武原從功臣).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literati were trained in Yeongcheon and Jisan School was trained in the south and north. The educational characteristics of Jisan were seen in the president's office or memorial service written by writers and advanced through education suitable for each ability. In addition, because he followed the laws of Seonghyeon, there was no difference between inside and outside, and he was consistent in normal and dangerous times, writers respected his teacher and formed the most academic groups during his surv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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