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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도시 지역의 姓貫변동 ―大丘府西上面을 중심으로

Change in surname origin in urban areas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 Centering around Seosang-myeon, Daegu-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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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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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姓과 本貫즉, 姓貫체계의 형성은 高麗초기 국가의 郡縣改編策의 시행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한국인의 성관체계는 시대를 경과하면서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갔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성관체계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났으며, 그 변화상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노비 인구의 축소와 함께 많은 無姓層이 성관을 갖게 된 것이다. 둘째, 조선전기부터 이루어진 改貫이 지속적으로 진행됨으로써 성관자체의 변동이 나타났다. 개관의 진행은 無姓層의 有姓化과정과 일정한 관련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후기에 형성된 성관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대구부 서상면의 호적대장에 기재된 성관기록을 토대로 조선 후기 도시 지역의 성관 변동에 대해 분석하였다. 또한 이를 농촌 지역인 慶尙道丹城縣의 성관 변동과 대비한 결과 다음과같은 결론이 도출되었다. 1. 17세기 후반 대구부 서상면의 전체 戶중에서 50%를 조금 상회하였던 有姓貫戶(A)는 100년이 지난 18세기 후반 무렵 90% 이상의 비율을 점하였다. 18세기를 지나면서 급격한 有姓化가 진행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던 단성현과 동일한 것이다. 다만 유성화의 확산 추세는 단성현보다는 대구부 서상면이 다소 약했다. 2. 有姓化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구부 서상면의 姓貫수치도 대폭 증가하였다. 이는 改貫및 大姓化등의 이유로 오히려 성관 수가 줄어들었던 단성현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특정 성관의 대성화가 이루어지면서도 단성현과는 달리 성관의 수치가 늘어난 이유는 도시 지역이라는 서상면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3. 대구부 서상면의 유력 성관의 변화는 土姓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대구 지역의 대부분의 토성이 축소, 소멸되어 갔던 경향성이 확인된다. 4. 유성화의 진전은 奴婢戶의 축소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었다. 완전한 성관을 갖지 못한 과도기적인 戶나 성관이 없는 戶는 奴婢戶와 소수의 良人戶였다. 18세기 호적대장에는 노비호의 급감과 비례하여 양인호의 증가가 두드러졌으며, 이는 유성관호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5. 대구부 서상면에서는 특정 성관이 특정 계층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았다. 특정 성관이 특정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은 조선의 성관이 갖는 성격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사실로 여겨진다. 중국의 경우 특정 지역의 성관은 곧 宗族을 의미했으며, 이에 따라 특정 지역의 성관은 단일한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에 비해 조선의 성관은 계층성을 내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Abstract

The study aims to conduct analysis on change in surname origin in urban areas during the latter half of Joseon Dynasty based on records on surname origin in family registers in Seosang-myeon, Daegu-bu. As a result of comparing it with the process of no-family name class in Danseong-hyeon, Gyeongsang-do turning into family name class, the following has been found. 1. The ratio of households with family name in Seosang-myeon that hovered over 50% in the latter half of the 17th century increased to 90% in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In the 18th century, households with family name rapidly increased. The phenomenon was the same as what happened in Danseong-hyeon, an agricultural area in Gyeongsang-do. However, how the surname origin of no-family name households is recorded somewhat differs in the two areas. It seems due to regional characteristics. 2. As households with family name rapidly increased in the 18th century, the number of family origins drastically expanded. It contracts with other areas where the number surname origins reduced for reasons of changed family origins and glorified surnames. 3. Although the number of surname origins had been reduced since the 18th century, concentration on specific surname origins took place in the same way in Seosang-myeon as well. Increase in the number of surname origins amid glorification of family names seems reflect regional characteristics of Seosang-myeon included in an urban area. 4. Specific surname origins were not confined to specific class in Seosang-myeon. It seems to carry significance with regard to characteristics of surname origins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was different from what happened in China where family origins were closely related to certain tribes.

참고문헌 (7)

  1. "『慶尙道大丘府戶籍大帳-西上面』 전산데이터 베이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대동문화연구원
  2. "『慶尙道丹城縣戶籍大帳』 전산데이터 베이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대동문화연구원
  3. 대구시사편찬위원회, "大邱市史", ~ (1973)
  4. 李樹健, "韓國中世社會史硏究" (1984), 一潮閣
  5. モーリス, "中國の宗族と社會" (1995), 弘文堂
  6. 김경란, "조선후기 ‘단성현호적대장’의 여성파악실태 연구", 박사, pp.2003
  7. 金京蘭, "조선후기 無姓層의 有姓化 과정에 대한 분석―단성지역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62), pp.75~103 (2008), 대동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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