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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貸食簡” 연구

A Study on the Daesikgan(貸食簡) of Korea and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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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자연 재해를 당하거나, 수확량이 적거나 없을 때, 중국 고대 각 정부는 무료로 구휼하는 것 외에 이재민에게 조건적으로 양식·종자·농기구 등을 빌려줌으로써 이재민이 난관을 잠시 넘길 수 있게 도왔다. 백성들은 빌린 양식을 갚을 때 정부에 이자까지 납부해야 했다. 1996년에 長沙 走馬樓에서 3세기 “貸食簡”이 대량 출토되었고, 2008년에 한국 부여 지역에서도 618년 백제 때 “佐官貸食記” 목간이 출토되었다. 走馬樓 吳簡에는 3가지 유형의 “貸食” 죽간이 있다. 비록 각 죽간의 내용이 독립적으로, 한 죽간마다 한 건의 일을 기록하였지만, 각 貸食에 관한 細目簡・小計簡・總計簡이 표제 문서와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완정한 장부로 연결된다. 이러한 “貸食” 장부는 右倉曹나 戶曹 등의 기관으로 보내 교정과 점검을 받게 하였다. 이것은 백제 때 佐官이 단독 목간 하나에 여러 명의 貸食 인원과 貸食 식량수와 미납 식량수를 나열한 것과는 다르다. “佐官貸食記”는 秦·漢 簡牘과 三國吳簡에 흔히 보이는 “上行下”나 “下行上”식의 공문서인 “記”와 달리, 인명수를 기록한 장부이다. 비록 양자가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양자 간의 연원은 역시 분명하고 뚜렷하다. 이 목간의 상단에 契口가 뚫려 있는데 秦·漢 簡牘의 “簽牌(표찰)”와 비슷하다. 이것은 백성들이 정부와 교환하는 대여 양식의 자루에 묶여 꼬리표 역할을 한다. 簡文 가운데 “貸食”이라는 두 글자는 秦·漢·魏晉·南北朝 이래 표준문자이며, “貸”라는 글자도 秦·漢 이래 “代”의 아래 부분을 길게 쓰고 “貝”는 가운데에 쓰는 방식으로 전승되었는데, 里耶秦簡과 三國吳簡 중의 “貸食”의 글자 모양과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대여 양식과 반환 양식의 총계로 알 수 있는 것은 백제 때 양식을 빌릴 경우 50%의 이자를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三國吳簡 중 “斛당 이자는 5斗”라는 규정과 일치한다. 대대로 전해진 문헌과 簡牘 자료는 모두 고대 조선반도 백제의 貸食 제도가 중국 진·한·위진·남북조 때 貸食 제도와 매우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백제가 東晉과 南北朝 시대의 각 정권과 우호적인 교류를 하였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Abstract

When people were struck by natural disasters or had little crops, Chinese ancient governments, besides free relief, had lent grains, seeds and farm appliances to help sufferers revive difficulties. When repaying them, people should pay even interest. In 1996, AD 3rd century “Daesikgan(貸食簡, wooden tablet containing grain lending records)” were excavated in large at Jangsa(長沙) Jumaru(走馬樓), China and in 2008, the wooden tablet “Jwagwandaesikgi(佐官貸食記)” of AD 618 Baekje(百濟) was unearthed at Buyeo(夫餘) region, Korea. Three types of “Daesik(貸食)” bamboo tablets are in Jumaru Ogan(吳簡). Though each bamboo tablet has a separate lending record, the breakdown tablet, subtotal tablet and sum tablet are related with their title, making a complete document. These “Daesik” document were sent to certain institutes, such as Uchangjo(右倉曹) and Hojo(戶曹), for correction and inspection. It is different from Baekje's Daesik recording in that a Jwagwan(佐官) recorded several borrowers, lending amounts and unpaid amounts on one wooden tablet. “Jwagwandaesikgi(佐官貸食記)” is a document recording the number of people, different with the “gi(記)” of “Sanghaengha(上行下)” or “Hahaengsang(下行上)” style that are easily found in Jinhan(秦·漢) Gandok(簡牘) and Samgukogan(三國吳簡). Though the two have differences, the origin of two is clear. A hole is pieced at the top of this wooden tablet, similar to the Cheompae(簽牌) of Jinhan(秦漢) Gandok. The hole, working as a label, was tied to the lending grains sack to be exchanged with government. The letter “貸食” in tablet had been a standard letter since Jin·han·wi·jin·nambukjo(秦·漢·魏晉·南北朝). “貸” letter was wrote traditionally with hanging the low part of “代” and inserting “貝” to the center. Such style is not much different from the “貸食” pattern of Riyajingan(里耶秦簡) and Samgukogan. From lending sum and repaying sum, it was known that Baekje received 50% interest. It is same to “5 du(斗) interest per 1 gok(斛)” regulation of Samgukogan. The transmitted literatures and Gandok material show that the Daesik system of Korea's ancient Baekje was closely related to the system of Chinese Jin·han·wi·jin·nambukjo. This is closely connected with the fact that Baekje had made amicable exchanges with the regimes of Dongjin(東晉) and Nambuk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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