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의여학교의 1903-1938년까지 음악교육 및 합창활동에 관한 연구
A Study on Music Education and Choral Activities at Soong Eui Girls’ Academy (Pyeng Yang Academy for Woman) from 1903 to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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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숭의여학교의 개교부터 폐교 이전까지 행해졌던 음악교육과 합창활동에 관한 연구이다. 평양지역은 북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1893년에 선교기지가 세워졌고, 사경회, 주일학교 등의 사역을 통해 1900년대초에는 폭발적인 부흥의 발생지로 주목받게 된다. 성경공부로써 글을 깨우친 사람들은 배움의 즐거움을 알아감과 동시에 자녀들, 특히 교육에 소외되었던 여성을 위한 근대교육의 필요성을 체감하게 되었다. 북장로교가 평양에 세운 첫 번째 여학교인 숭의여학교는 여성 중등교육의 시초로서, 우리나라의 근대의 서양 음악교육과 음악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예시가 된다. 첫 교장인 베스트는 자신의 모교인 파크 대학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기독교 지도자 배출을 목표로 여성을 위한 중등교육의 체계를 갖추었으며, 그녀를 이어 33년간 교장과 설립자를 역임했던 스눅은 학생들을 기독교 정신을갖춘 인격자, 그리고 현모양처를 길러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학교의 교육목표는 음악교육에도 적용되어, 사회와 교회에서 필요한 신앙인을 길러내고 학생들의 정서순화를 위해 필요한 교육의 일환으로 행해졌다. 학년마다 한주에 1-2시간씩 음악수업이 배정되었으며, 주일학교와 전도 활동, 애국계몽 활동을 위해 언제나 노래가 활용되었다. 개교 초부터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행해졌던 가창과 오르간 교육은 1920년대 중반부터 점차 숭의여학교 출신 한국교사들에 의해 맡겨졌고, 1930년대에는 전적으로 음악을 전공한 한국인 음악교사가 담당하였다. 특히, 합창지도에전문성을 갖춘 이화여전 출신의 김신복과 김명애의 지도로 학생들의 실력은 더욱 향상되었다. 주중에 방과 후에 음악구락부로 모여 규칙적인 연습을 실시한 숭의합창단은 1930년대에 스왈른 교장의 특활활동 활성화 정책으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러한 숭의합창단의 음악활동은 거의 평양지역 안에서 이루어져 활동의 범위가 협소했으며, 주로 숭실학교와 연계된 연주에 초청되어 주도적인 활동을 펼쳤다고 보기에 어려운 한계점이 발견된다. 또한 신사참배를 거부한 숭의여학교는 1938년의 폐교를 감행하여 더는 평양 땅에서 숭의의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숭의여학교는 평양지역에 세워진 첫 근대 여학교로서, 서양음악이 발아하고 성장하는 데에 큰 배경지가 되었으며, 이들의 음악 활동은 학교가 추구한 봉사와 나눔의 정신이 음악교육과 합해진결과로서 큰 의미가 있다.
Abstract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music education and choral activities that took place at Soong Eui Girls’ Academy from its opening to its closure. The Pyeng Yang area was established as a missionary compound by Northern Presbyterian missionaries in 1893, and as a result of the ministry they led for many years, such as Bible study and Sunday school, it became a place of explosive revival in the early 1900s. Soong Eui Girls’ Academy, the first girls’ academy established by the Northern Presbyterian Church in Pyeng Yang, was the root of secondary education for women, and became an important example of modern Western music education and music activities in Korea. Music classes were assigned for 1-2 hours a week for each grade, and songs were always used for Sunday school, missionary work, and patriotic enlightenment activities. The singing and organ education that had been conducted by Western missionaries since the school’s opening was gradually taken over by Korean teachers from Soong Eui Girls’ Academy from in the mid-1920s, and in the 1930s, it was exclusively taught by Korean music teachers who majored in music. In particular, the students’ skills were further improved under the guidance of Kim Shin-pok and Kim Myung-ai, who were graduates of the Ewha College Music Department and specialized in choir instruction. The Soong Eui Chorus, which gathered as a music club after school during the week and practiced regularly, continued to be the most active in the 1930s due to Principal Swallen’s policy of revitalizing special activities. However, since the musical activities of the Soong Eui Chorus were mostly conducted within the Pyeng Yang and the scope of activities was narrow, there is a point of limit which makes it difficult to conclude that they were mainly invited to the performances related to Soong Sil Academy(Pyeng Yang Presbyterian boys’ Academy) and took the lead in the activities. Furthermore, after the academy closed in 1938, the singing of Soong Eui Girls’ Academy in Pyeng Yang could no longer be heard. However, Soong Eui Girls’ Academy served as a major backdrop for the germination and growth of Western music in the Pyeng Yang area, and their musical activities were very meaningful as a result of the academy’s pursuit of service and sharing combined with music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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