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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淨橋·春陽橋의 ‘獅子 石柱’, 이미지와 의미

The Lion Stone Pillar of Woljeong·Chunyang Bridge; Its Image and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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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신라의 대표 교량인 월정교와 춘양교의 입구 좌우에는 한 쌍의 ‘사자 석주’가 있었다. 사자 석주는 방형 대석 위에 팔각형의 석주가, 다시 그 위에 사자상으로 구성된다. 이들 사자 석주의 위치와 수량은 발굴 위치와 남겨진 부재의 숫자로 미루어 보았을 때 교량의 입구 좌우에 각 1기씩 서로 쌍을 이루어 세웠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동일한 형식의 사자 석주는 당대 황제릉 중 626년 사망한 高祖 이연의 獻陵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당대 사자 석주는 당 고조 헌릉에서 한차례 등장할 뿐이며, 이후 7세기 중엽~8세기에는 석주 위의 사자는 사라지고, 대신 보주가 놓인다. 월정교와 춘양교의 ‘사자 석주’는 唐 황릉 ‘사자 석주’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기보다는 신라 왕릉 수호의 사자상과 왕릉 입구의 석주를 결합시킨 신라의 창안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뿐만 아니라 그 위치도 능의 입구가 아닌 교량 입구에 세워진 것이어서 특별하다. 월정교와 춘양교 사자 석주는 당의 능묘 사자 석주와 제작 시기도, 위치도 다르지만 성스러운 장소 입구에 세워져 聖俗을 구분 짓고, 사악한 기운을 막아준다는 기능은 동일하다. 고대 사회에서 교량의 역할은 지금과는 또 다르다. 단순히 강을 건너는 의미를 넘어서 경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월성의 남쪽 끝에 위치한 월정교와 동북 끝에 위치한 춘양교는 왕경과 남천 이남, 그리고 남산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교량이 있어야만 왕경에서 남천 이남 지역과 남산으로 이동할 수 있다. 특히 남산은 왕, 왕족, 귀족 등 왕경인이 유사시에 대피할 최후의 장소인 남산 新城이 위치한 곳이어서 이곳으로의 이동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사자 석주’는 왕경과 남천 이남, 남산신성 등을 연결하는 월정교와 춘양교의 입구에 세워져 두 공간을 구분하고 왕경으로 침입하는 삿된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Abstract

On the left and right of the entrance of Woljeong and Chunyang Bridge in Shilla Dynasty was a pair of lion stone pillar. It is composed of octagonal stone pillar on top of the throne; situated on the stone pillar is the lion figure sitting on the octagon-shaped pedestal. The number and the location of lion stone pillars are estimated to be one pair each, positioned on the left and right of the entrance of the bridge, according to the excavation site and the number of member of frameworks remaining. The lion stone pillar of the same form can be found in Gaozu(高祖) Xianling(獻陵) of the Tang Dynasty. However, during the era, lion stone pillar only appears once in the Gaozu Xianling. Afterwards in the mid 7th and 8th century, the lion figure on top of the stone pillar disappears, and cintamani takes its place. The lion stone pillar of the Woljeong and Chunyang Bridge is rather a creation of Shilla Dynasty that combined the lion figure and the stone pillar of the royal tomb than the influence of Tang Dynasty. Furthermore, its position in front of the bridge is also unique, unlike the common location which is at the entrance of the tomb. Even though this stone pillar is different from the pillar of Tang Dynasty in its creation period or location, it functions similarly as a holy pillar that separates the divine and the common world and drives away the evil spirits. The role of bridge in the ancient society is also different from nowadays. It served crucial economic and military roles along with the basic function as a bridge. Especially, the Woljeong Bridge situated in the south end and the Chunyang Bridge in the east end of Wolseong connects the Royal District and the Nam Mountain. These bridges were the only possible way to move from the Royal District to the South River and the Nam Mountain. The Nam Mountain held a special meaning because the fortress where the people of Royal District used as their emergency shelter was located. The function of lion stone pillar constructed at the entrance of Woljeong and Chunyang Bridge is no different from that of the stone pillar of the royal tomb in that it severs the divine and the com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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