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 麻立干期 지역지배의 양상과 금공위세품의 사여
Aspect of local dominance and Bestowing of gilt-bronze prestige gooss in Maripgan period of Silla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新羅는 尼師今期부터 주변 지역공동체에 대해 지배력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현실적인 힘의 한계가 있었고 지역마다 지리적 위치․사회적 상황이 달라, 부족한 힘으로 복잡한 지배 조건에 적극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으로 新羅의 지역지배력이 공고한 통치력으로 안착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新羅는 지역마다 각각의 조건에 맞추어 지배방식을 달리 선택하면서 힘을 발휘해나갔다. 특히 麻立干期 동안 新羅 중앙에서 麻立干 및 핵심 지배세력을 중심으로 집권력이 신장되고 지배질서의 일원화가 진전되었다. 이러한 변동과 함께 新羅 내부의 사회 원리와 지배질서를 외부에 일정하게 준용하여 지역지배의 수준을 높이려는 시도가 추진되었다. 이와 같은 목적에서 지역의 중심 세력을 매개로 금공위세품을 사여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6세기 초 新羅는 행정제도를 정립하고 이를 기초로 지방을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금공위세품을 사여하는 방식은 서서히 폐지되어 갔다. 사여 방식의 폐지와 함께 新羅 주변의 여러 지역공동체 내에서 금공위세품이 상징하던 일련의 위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위계는 지배 수준의 상승에 걸맞게 질서의 재편을 거쳐 행정제도의 형식 내로 수렴되어 정치한 관등제의 체계 속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렇듯 금공위세품의 사여 방식은 新羅 내외의 지배력 상승을 토대로 지역지배가 지방통치로 변화하는 과정을 정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역사적 단서로 파악된다.
Abstract
Silla reached its controlling power toward surrounded local communities since Nisaguem period. But its power was limited in practice as its degree of local dominance depended upon geographical and social conditions of each local place. The limitation made the kingdom difficult in responding to the complicated conditions for local dominance. As such, it took longer time for Silla to consolidate its local dominance and to develop into a certain form of governance. Silla expanded its local dominance by adjusting itself to each condition of different local communities. In particular, significant progress was accomplished during Maripgan period as the ruling class including Maripgan could increase their supremacy by the progress in centralization of controlling order. Meanwhile, they attempted to extend their ruling principles of inner Silla into outer societies in order to strengthen the degree of local dominance. The bestowing of gilt-bronze prestige goods was arranged for that purpose. In early sixth century A.D., Silla stabilized the government institution through which the kingdom could also carry out provincial governance. In that process the bestowing of gilt-bronze prestige goods came to vanish. It is noteworthy, however, that a series of hierarchy in local communities, which the gilt-bronze prestige goods had symbolized, did not disappear. The former hierarchy was applied in the government institution based on the growth of control through the reorganization of order. It was eventually reflected in the consolidated hierarchy of officialdom. Therefore, the historical changes in the custom of bestowing gilt-bronze prestige goods of Silla unpack the process how local dominance was developed into provincial governance through the ground of growing supremacy in and out of the kingdom.
참고문헌 (68)
- "三國史記", ~
- "三國遺事", ~
- 朝鮮總督府, "慶州金冠塚と其遺物 圖版 下冊(古蹟調査特別報告 第3冊)", ~ (1927)
- 國立博物館, "義城塔里古墳" (1962), 乙酉文化社
- 皇南大塚-慶州市 皇南洞 第98號古墳 南墳 發掘調査報告書-(本文), "文化財管理局 文化財硏究所", ~ (1994)
- 湫岩洞 B地區 古墳群 發掘調査報告, In 東海北坪工團造成地域 文化遺蹟 發掘調査報告書, "關東大學校 博物館", ~ (1994)
- 全德在, "新羅六部體制硏究" (1996), 一潮閣
- 朱甫暾, "新羅 地方統治體制의 整備過程과 村落" (1998), 신서원
- 金龍星, "新羅의 高塚과 地域集團-大邱․慶山의 例-" (1999), 춘추각
- 이한상, "황금의 나라 신라" (2004), 김영사
- 김현숙, "고구려의 영역지배방식 연구" (2005), 모시는사람들
- 하일식, "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 (2006), 혜안
- 이희준, "신라 고고학 연구" (2007), 사회평론
- 국립춘천박물관, "권력의 상징, 冠", ~ (2008)
- 장창은,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2008), 신서원
- 김용성, "신라왕도의 고총과 그 주변" (2009), 학연문화사
- 金龍善, "全海宗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1979), 一潮閣
- 邊太燮, "中原高句麗碑의 內容과 年代에 대한 檢討", 史學志, 13 (1979)
- 李基白, "中原高句麗碑의 몇 가지 問題", 史學志, 13 (1979)
- 毛利光俊彦, "文化財論叢(奈良國立文化財硏究所創立30周年記念論文集)" (1983)
- 盧泰敦, "5세기 金石文에 보이는 高句麗人의 天下觀", 韓國史論, 19 (1988)
- 金龍星, "慶山‧大邱地域 三國時代 古墳의 階層化와 地域集團", 嶺南考古學, 6 (1989)
- 全德在, "新羅 州郡制의 成立背景硏究", 韓國史論, 22 (1990)
- 李宇泰, "新羅 中古期의 地方勢力 연구", 박사, 국사학, pp.1991
- 하일식, "6세기 新羅國家의 地方支配와 外位制", 學林, 12-13 (1991)
- 朴普鉉, "積石木槨墳의 階層性 試論", 古代硏究, 3 (1992)
- 徐永大, "譯註 韓國古代金石文1(고구려‧백제‧낙랑편)" (1992), 韓國古代社會硏究所
- 毛利光俊彦, "西谷眞治先生古稀記念論文集" (1995), 勉誠社
- 李漢祥, "5~6世紀 新羅의 邊境支配方式-裝身具分析을 중심으로-", 韓國史論, 33 (1995)
- 하일식, "한국역사입문①(원시‧고대편)" (1995), 풀빛
- 咸舜燮, "大邱 飛山洞37號墳 2石室 出土 冠", 古代硏究, 4 (1995)
- 權五榮, "三韓의 「國」에 대한 硏究", 박사, 국사학, pp.1996
- 朴普鉉, "碩晤尹容鎭敎授停年退任紀念論叢" (1996)
- 李熙濬, "碩晤尹容鎭敎授停年退任紀念論叢" (1996)
- 朱甫暾, "麻立干時代 新羅의 地方統治", 嶺南考古學, 19 (1996)
- 申大坤, "羽毛附冠飾의 始末", 考古學誌, 8 (1997), 韓國考古美術硏究所
- 朱甫暾, "4~5세기 釜山地域의 政治的 向方", 제1회 부산광역시립복천박물관 학술발표대회 (1997)
- 朱甫暾, "朴堤上과 5세기 초 新羅의 政治 動向", 慶北史學, 21 (1998)
- 김용성, "압독 사람들의 삶과 죽음" (2000), 국립대구박물관
- 이한상, "4세기 전후 신라의 지방통제방식-분묘자료의 분석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37 (2000)
- 李熙濬, "慶北大學校 考古人類學科 20周年 紀念論叢" (2000)
- 林起煥, "中原高句麗碑 硏究" (2000), 학연문화사
- 김용성, "召文國에서 義城으로" (2002), 국립대구박물관
- 金宰賢, "東海 湫岩洞 人骨의 形質的 特性에 대하여", 博物館誌, 2-3 (2002), 關東大學校 博物館
- 李熙濬, "4~5세기 신라 고분 피장자의 服飾品 着裝 定型", 한국고고학보, 47, pp.63~92 (2002), 한국고고학회
- 朱甫暾, "新羅國家 形成期 金氏族團의 成長背景", 韓國古代史硏究, 26 (2002)
- 주보돈, "召文國에서 義城으로" (2002), 국립대구박물관
- 이성주, "가야 고고학의 새로운 조명" (2003), 혜안
- 이재현, "변·진한사회의 고고학적 연구", 박사, 사학, pp.2003
- 洪志潤, "尙州地域 5世紀 古墳의 樣相과 地域政治體의 動向", 영남고고학, 32, pp.83~106 (2003), 영남고고학회
- 이성주, "技術, 埋葬儀禮, 그리고 土器樣式: 尙州地域 洛東江以東 土器樣式의 成立에 대한 解釋", 한국고고학보, 52, pp.95~136 (2004), 한국고고학회
- 張容碩, "大邱 佳川洞 出土 金銅冠에 대한 一考察", 嶺南文化財硏究, 17 (2004)
- 최장렬, "고대로부터의 통신" (2004), 푸른역사
- 이희준, "4~5세기 창녕 지역 정치체의 읍락 구성과 동향", 영남고고학, (37), pp.5~42 (2005), 영남고고학회
- 권오영, "고고자료에서 찾은 高句麗인의 삶과 문화" (2006), 고구려연구재단
- 김대환, "압독국과의 통신 토기의 메시지" (2006), 영남대학교박물관
- 최진녕, "5~6세기 상주지역 이음식석곽묘의 검토", 天馬考古, 3 (2006)
- 장용석, "임당 유적을 통해 본 경산지역 고대 정치체제의 형성과 변천", 야외고고학, (3), pp.43~85 (2007), (사)한국매장문화재협회
- 우병철, "4~6세기 영남 동해안 지역의 문화와 사회" (2009), 동북아역사재단
- 김용성, "창녕지역고총 묘제의 특성과 의의", 고대사 정립을 위한 제1회 학술회의 (2009)
- 이성주, "新羅·加耶土器樣式의 生成", 한국고고학보, (72), pp.72~117 (2009), 한국고고학회
- 朱甫暾, "文獻上으로 본 古代社會 昌寧의 向方", 고대사 정립을 위한 제1회 학술회의 (2009)
- 서경민, "의성양식토기의 분포로 본 의성 지역 권역",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학술회의 (2010)
- 이재환, "5~6세기 의성 지역 고분의 특성과 高塚의 의의",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학술회의 (2010)
- 이한상, "의성지역 금공위세품의 제작기법과 연대",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학술회의 (2010)
- 김진형, "尙州地域 古代 政治體의 形成과 展開-상주지역 墳墓를 중심으로", 영남문화재연구원 제24회 조사연구회 (2011)
- 하대룡, "慶山 林堂遺蹟 新羅 古墳의 殉葬者 身分 硏究 -出土 人骨의 미토콘드리아 DNA 分析을 中心으로-", 한국고고학보, (79), pp.175~204 (2011), 한국고고학회
- 김대환, "상주 지역 고분 자료의 역사고고학적 이해-신라 고총체계 내에서 상주 지역의 고총", 상주박물관 개관5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