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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南古壘 성격 재검토

A Reexamination of the Function of the Earthen Mound, Namgo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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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고의 목적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남고루의 성격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이래 최근까지 조사되어 오고 있는 남고루의 연구사적 배경을 알아보고, 192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이 유적의 성격이 ‘城’ 혹은 ‘堤防’이었던가에 대해서 논의되어 오고 있는 상황을 알아보았다. 1970 및 1990년대 초 그리고 최근까지 남고루 일부가 발굴조사 되었으나 아직 그 성격은 명확하게 구명되지 않았다. 1972년 남고루가 ‘성’이었다는 논고가 발표된 이래 대부분 연구자들이 이 설을 취하였으나 1993년 이 유적 일부가 당시 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 되고 조사자들이 역사 및 고고학 자료 그리고 북천의 물흐름과 관련된 지형을 분석하여 보고서에서 ‘제방’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 이래 필자를 포함한 몇몇 연구자들이 경주의 독특한 지형과 관련하여 남고루는 제방이었다는 견해가 도출되기 시작하였다. 일부 연구자들은 여전히 경주읍성을 ‘내성’으로 보고 남고루를 ‘외성’으로 간주하여 ‘제방’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본고에서 그간의 연구성과와 문헌 및 고고자료를 분석한 결과 남고루는 ‘성’이 아니라 ‘제방’으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Abstract

This paper reexamines the function of the earthen mound, called Namgoru (South High Mound), located in the southeastern part of the modern city of Gyeongju. Some Japanese researchers recognized and investigated this earthen structure since the late 1920s. A Japanese architecture historian, Fujisima, put forward an idea that this may have been a bank built for the purpose of protecting Gyeongju city from the flood caused from North Stream. Other Japanese historians argued that this may have been a fortress. Although the earthen wall was designated as Korean National Historical Site in 1936, not many Korean researchers have paid attention to it. In 1972, a Korean archaeologist argued that this was not a bank but an outside fortress in association with an inside fortress located in downtown Gyeongju. In 1973, a part of this structure was excavated by Korean archaeologists, while they were investigating Silla burials in front of King Michu Tomb. They also considered this earthen mound not as a bank but as a fortress. Another archaeological excavation was conducted by Gyeongju National Research Institute in 1993. Based on exposed features such as a masonry structure and a puddle, they explain the function of the mound. Although they mentioned a possibility of a bank, they did not rule out the possibility of a military defensive wall either. Recently a couple of more archaeological expeditions were conducted against the earthen wall. They argued that it was a fortress based on a feature assumed to be a base for a gate. Thus, the function of the structure turned out to be still a hot debating research topic. By combining the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records available, I made a conclusion that the mound was not a fortress but a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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