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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논단(論壇)과 지식인―1960년대 종합잡지의 쇠락과 전후지식인의 퇴장―

‘Platform for discussion(NonDan, 論壇)’ and intellectuals in post-war Japan─The fall of comprehensive magazines in the 1960s and the exit of post-war intellectu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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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일본어와문학

초록

아시아・태평양전쟁 기간동안 검열과 통제로 인해 활자에 굶주렸던 전후 대중들은 종합잡지에 열광했고, 종합잡지는 텔레비전에 그 역할을 상실하는 70년대까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핵심 대중매체로 기능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후 논단의 위상 속에서 지식인들은 논설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을 마음껏 발신할 수 있었다. 그들의 기고문은 게재될 때마다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수많은 반향과 파장을 불러왔다. 따라서 그들이 여론을 선도하면서 새로운 대중적 사상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던 종합잡지를 기반으로 하는 논단이라는 언론 생태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46년부터 70년대 초중반까지 일본에서는 활자화된 언론매체를 통해 발신된 이러한 지식인들의 언설이, 전후 일본사상을 대표하는 시금석이자 나침판 역할을 하였으며,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60년대 말(전공투)을 고비로 논단의 열기는 식어갔고, 단카이세대가 전면에 등장하는 1970년대 이후 TV 미디어의 영향력 강화는 ‘논단의 몰락’을 초래했다. 때문에 전전 일본에 대한 비판적 언설과 사상을 전후 20년간 발신하면서, 언론계의 비즈니스적 성격까지도 좌우했던 전후지식인들의 강력한 사상적 담론은 대중적 관심과 함께 소멸되어 갔다.

Abstract

After the war, the public was enthusiastic about general magazines. The reason is that people were starved of printed materials due to censorship and control during the Asia-Pacific War. And until the 1970s, when its role was lost to television, general magazines functioned as a key mass media with absolute influence. In the post-war commentary, intellectuals were able to freely vent their thoughts. Every time their contributions were published, they had a significant impact, generating numerous repercussions and repercussions. As a result, they became a significant means of leading the public opinion and establishing a new public ideological foundation.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e media ecosystem called ‘NonDan(: platform for discussion, 論壇)’ based on comprehensive magazines. From 1946 to the mid-70s in Japan, these intellectuals’ remarks, which were sent through printed media, served as a touchstone and compass for post-war Japanese thought and exerted a powerful influence incomparable to that of today. However, after the late 1960s, the heat of the argument cooled, and after the 1970s, when the Dankai generation came to the fore, the strengthening of TV media’s influence caused the ‘down of the argument’. As a result, the powerful ideological discourse of post-war intellectuals, who had influenced even the business nature of the media world by transmitting critical remarks and ideas about pre-war Japan for 20 years after the war, disappeared along with public 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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