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한성도읍기의 도성체계와 아차산성
The structure of Hanseong Capital fortress in Hanseong Period of Baekje and Achasanseong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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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도성이라는 말은 본래 중국에서 왕(천자)이 사는 도시를 감싼 곽성(郭城)을 가리켰다. 곽성은 왕이 사는 내성(內城)=왕성(王城)을 감싸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열국(列國)의 전쟁이 잦았던 전국시대에는 왕의 안전을 위해 내성이 곽성 바깥에 따로 자리잡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趙)의 한단성(邯鄲城), 제(齊)의 임치성(臨淄城), 연(燕)의 하도성(下都城) 등이다.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한성은 북성(北城)과 남성(南城)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북성은 지금의 풍납토성, 남성은 지금의 몽촌토성이다. 강변에 위치한 백제 도성을 안전하게 지키려면 한강 건너편의 아차산에 방어시설을 설치했을 것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지금의 아차산성은 신라가 쌓은 석성(石城)임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백제의 아차성(阿且城)은 그 주변지역에 위치했을 개연성이 있다. 아마도 풍납토성이 잘 내려다보이는 높지 않은 곳에 위치한 토성이었을 것이다. 백제 아차성을 찾기 위한 발굴조사가 필요하다.
Abstract
Capital fortress was originally refered to Gwakseong fortress surrounding the city where the king lived. The usual point was that the Royal palace (=the inner fortress) was located in Gwakseong fortress. But in particular period like ‘Warring States Period’ on ancient china, when all states are competing over a period of decades for the purpose of unification, the inner fortress was located separately outside Gwakseong fortress for escape of the king. The main capital fortress of that period were Handan fortress, Imchi fortress and Yeonhado fortress. According to the Samguksagi, Hanseong fortress, the capital fortress of Baekje, was composed of a North fortress and a South fortress. The North fortress is equated with present-day Pungnaptoseong fortress and the South fortress is equated with present-day Mongchontoseong fortress. They would have installed defense in Achasan Mt, where was across from Han River to defend Baekje capital fortress which was located near by Han River. Through the excavation result, it has been known that present-day Achasanseong fortress was built with stone by Silla. Thus it is possible that Achaseong fortress of Baekje would be located around Achasanseong fortress. It might be at the lower area with a view of Pungnaptoseong fortress. We need to consider the excavation for finding Achaseong fortress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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