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입항 1975년 베트남난민과 한국사회
A Study on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of 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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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입항 1975년 베트남난민과 한국사회를 주제로 한 본고는 1,580명에 이르는 1975년 베트남난민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그간 이용되지 않았던 부산광역시 기록관 자료와 회고담에 더하여 신문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1975년 베트남난민이 발생한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2차문헌을 폭넓게 이용했다. 이를 통해 본고가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밝히려는 내용은 3가지이다. 첫째 부산에 입항한 1975년 베트남난민이 구조된 경위, 정부의 정책과 구호활동, 그리고 한국에서의 정착과 제3국으로의 이주의 흐름과 의미이다. 둘째는 이들 1975년 베트남난민이 애초에 발생하게 된 배경에 중점을 두면서 LST난민과 쌍용호난민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분석의 시공간은 1950년대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베트남과 미국으로 확대된다. 마지막으로 본고가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우리 사회가 1975년 베트남난민을 ‘활용’했던 맥락과 방식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Abstract
Based on the Busan archive materials and newspaper information as well as published sources, this article intends to provide a comprehensive account of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in Korea. The description and analysis are focused on the three aspects of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in Korea; Korean government efforts to relief, settlement in Korea and resettlement in the third countries; the characteristics of the LST-refugees and Twin Dragon-refugees anchored at Busan; and interactions between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and Korean society as a whole. The article discovers that whereas the second Vietnamese refugees from 1977 to 1989 in Korea shared the common characteristic with "Boat People" in general,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were very special because they were either overseas residents or Vietnamese having connections with Korean who had worked in Vietnam. It led the Korean government to rescue them by dispatching two LSTs, implemented settlement programs including job-finding, housing allowance, supplementary living allowance. Also, the article traces the origin of the 1975 Vietnamese refugees in the context of the deteriorating South Vietnam, Vietnam war and international politics, which would have revealed the symptom of the continuous flows of the Vietnamese refugees until the 1990s. Finally, the article highlights the way that this very first resettlement experience of the Vietnamese refugees with different culture transformed the Korea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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