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고대일본의 견수사·견당사에 관한 기초적 연구-입당승·입송승 이해를 위한 서장-
A Fundamental Study on the Kenzuisi and Kentousi of Ancient Japan in the 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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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고대 일본의 입당승 및 입송승 이해’를 위한 기초적 연구로서, 7세기에 고대일본이 중국에 파견한 견수사와 견당사(초기견당사), 그리고 그에 동반해 파견된 학문승・학문생(학생)에 대해 관련 자료를 가능한 한 폭넓게 수집하고 그에 기초해 견수사 및 초기견당사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검토했다. 즉, 사절의 기본적인 성격문제, 통사문제 등을비롯한 사절구성과 파견회수, 항로문제 등을 살펴보고 아울러 학문승과학문생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인선된 인물들의 출자문제, 파견규모, 수당에서의 체재기간, 귀국 후의 행적과 귀국 시 장래한 문물 등을가능한 한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견수사와 초기견당사의 사절로서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정치외교사절, 정치문화사절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 사절의 구성은 대사와 부사 체제를 기본으로 하여 제3차견당사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 대사 위에압사를 두고 있다는 점, 항로는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백제 및 신라의 연안을 항해하는 북로가 취해지고 있다는 점, 학문승 및 학생의 인선 대상이 된 인물들은 그 출자가 대체로 漢(아야)・新漢(이마키노아야)씨로 대표되는 한반도 도래계 씨족의 후예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 중국에서의 유학기간은 견수유학승・학생은 약 30년, 견당유학승・학생은 약 25년이라는 장기간의 체재가 확인되어 중장기적인 전망 하에서 학문승・ 학생 파견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수당에서의 귀국 후의 활동은실로 다양한데 왕재교육을 담당한 교육자・지도자로서의 南淵請安, 국가정책을 건의한 慧日, 국가정책을 입안하는 국박사로서 국가체제 및 법제의 정비에 활약한 僧旻과 高向玄理, 외교사절로 활동하는 고향현리와혜일, 정치자문역의 승민, 大僧都나 律師로서 불교계를 지도하는 觀常 이나 觀智의 사례 등 실로 다양한 방면에서 지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중국(수당)에 파견한 학문승・학생이 수행한 역할과 의미에있어서 특히 신라에 파견한 학문승과의 공통성과 차이점을 보다 분명히파악하기 위해, 견수사・견당사 파견을 전후한 시기에 한반도 제국과 왜국을 왕래한 학문승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우선, 삼국에서 왜국에 파견된 승의 사례를 정리해보고, 이어서 왜국에서 한반도로 파견된 학문승에대해 검토한 후, 통일신라에 파견된 신라학문승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로서, 왜국이 해외에 파견한 최초의 학문승은 백제에 유학시킨善信尼등의 비구니라는 점, 학문승 파견에는 상대국의 허가 등 일정한절차가 필요하다는 점, 최초의 학문승인 선신니 파견 이후 백제에의 학문승 파견은 일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이는 백제에 의한 불교공전 이래혜총과 관륵으로 대표되는 다수의 백제승(비구니도 포함)이 왜국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파견되고 있는 점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는 점, 혜총은비조사의 주지이자 고구려승 혜자와 함께 성덕태자의 스승으로서 추고조를 중심으로 하는 아스카시대의 정치문화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고, 관륵 또한 역법이나 천문지리, 둔갑방술 등의 특수기능을 직접 전수・지도했을 뿐만 아니라 왜국 최초의 승정으로서 불교계를 통괄하는 역할을수행하고 있다는 점, 고구려의 경우는 혜자와 담징으로 대표되는 다수의고구려승의 도왜와 아울러 왜국에서 고구려에 학문승이 파견되고 있다는점, 신라의 경우는 645년 이전까지는 왜국에 파견된 신라승의 존재나 왜국의 신라학문승 파견 사례는 일체 확인되지 않아 백제 및 고구려와는좋은 대조를 보인다는 점, 신라의 경우는 개신정권 성립 이후에 최초의승려 파견과 신라에의 학문승 파견 사례가 각 1회씩만 확인되고 있다는점, 이와 달리 통일신라와 일본의 경우는 백촌강 전투 이후 단절되었던공적인 교류가 668년에 재개된 이후 700년까지의 약 30년 동안 14명의신라학문승 파견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 이는 608년부터 703년까지의 약100년 동안 수・당에 파견된 학문승의 수 18명에 비하면 그 빈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다만, 신라학문승의 체재기간은 약 3년으로 수・당학문승과는 달리 단기유학임), 나아가 신라학문승 明聰과 觀智가 신라의 師友에게 보내는 賜物의 존재가 말해주는 것처럼 신라학문승을 통한 신라불교계와의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점, 山田史御形의 사례에서 보듯이 귀국후 국사(일본서기)의 편찬에 깊이 관여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점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컨대 백제로 대표되는 삼국에서 왜국으로 파견된 승과 통일신라에 파견된 왜국의 신라학문승의 존재에서확인되는 승려의 역할과 기능 및 다양한 양태는 왜국(일본)이 중국에 파견한 수・당 학문승・학생의 역사적 의미를 고찰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 후기 견당사에 동반한 입당승이나 입송승에 대한종합적 이해를 위한 기초적 지식을 마련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양자의시대적 배경 및 파견 목적, 정치문화와 외교사상의 역할과 기능 등의 차이를 비교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승의 다양한 양태를 확인함으로써 입당승・ 입송승의 역사적 의미를 추구하는데 있어 매우 귀중한 실마리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本硏究は、‘古代日本の入唐僧及び入宋僧についての理解’のための基礎 的硏究として、7世紀に古代日本が中國に派遣した遣隋使と遣唐使(初期遣 唐使)、そしてそれに伴って送った學問僧・學問生(學生)に関して、關聯資料 を可能な限り広く集め、それらに基づいて遣隋使及び初期遣唐使に対する基 本的な事項を檢討した. すなわち使節の基本的な性格問題や通事問題などを 初めとする使節構成と派遣回數、航路の問題などを検討し、さらに學問僧と 學問生の事例を具體的に檢討しながら人選された人物たちの出自問題、派 遣規模、隋唐での滯在期間、歸國後における行績や歸國時に將來した文物 などを具体的に追跡した. その結果、遣隋使と初期遣唐使の使節としての性格は、基本的に政治外 交使節、政治文化使節の性格をもつこと、使節の構成は大使と副使という體 制を基本として、第3次遣唐使のような特別な場合には、大使のうえに押使を おくこと、航路は基本的に韓半島の百濟・新羅の沿岸を航海するいわゆる北 路をとること、學問僧・學生の人選對象とされた人物たちは、その出自が主に 漢・新漢氏に代表される、韓半島からの渡來系氏族の後裔たちがその中心を なすこと、中國での留學期間は遣隋留學僧・學生は約30年、遣唐留學僧・ 學生は約25年という長期間の滯在が確認され、当時の倭国(日本)が中長期 的な展望のもとで學問僧・學生の派遣政策がなされたこと、隋唐からの歸國後の活動は実に多樣であり、王才敎育を担った敎育者・指導者としての南淵 請安、國家政策を建議した慧日、國家政策を立案する國博士として國家體 制及び法制の整備に活躍した僧旻と高向玄理、外交使節として活動する高 向玄理と慧日、政治諮問役の僧旻、大僧都や律師として佛敎界を指導した 觀常や觀智の事例など、實に多樣な方面で至大な役割を果たしたことを確認 することができた. 次に、中國(隋唐)に派遣した學問僧・學生が遂行した役割や意味におい て、特に新羅に派遣した學問僧との共通性や差異点をより明らかにするため に、遣隋使・遣唐使の派遣を前後した時期に、韓半島諸國と倭國との間を往 來した學問僧について檢討した. まず、三國から倭國へ派遣された僧の事例 を整理し、続いて倭國から韓半島へ派遣した學問僧について検討し、さらに統 一新羅に送った新羅學問僧の存在について検討した. その結果として、倭國が海外に派遣した最初の學問僧は、百濟に留學した 善信尼などの比丘尼であること、學問僧の派遣には相對國の許可など一定 の派遣手続きが必要であること、最初の學問僧である善信尼の派遣以降、 百濟への學問僧の派遣は一切見られないこと、これは百済からの佛敎公傳以 来、惠聰と觀勒に代表される多數の百濟僧(比丘尼も含む)が倭國に長期 間、持續的に送られていたことと不可分の関連があること、惠聰は飛鳥寺の 住持として高句麗僧・惠慈と共に、聖德太子の師として推古朝を中心とする飛 鳥時代の政治文化に大きな役割を果たしたこと、觀勒もまた曆法や天文地 理、遁甲方術などの特殊技能を保持し、それらを直接、倭国の弟子達に傳 受・指導したばかりでなく、倭國最初の僧正として、当時の日本佛敎界を統 括する役割を遂行したこと、高句麗僧の場合は、惠慈と曇徵に代表される多 數の高句麗僧の渡倭があり、かつ倭國から高句麗への學問僧が派遣された こと、新羅の場合は、645年以前までは倭國に送られた新羅僧の存在や倭國 からの新羅學問僧の派遣事例は一切見られないこと、この点は百済及び高 句麗の場合とは好対照をなすこと、新羅に対しては改新政權の成立以後において最初の僧侶派遣と新羅への學問僧の派遣事例とが確認されること、これ に対して統一新羅と日本との間では、白村江の戦い以後跡絶えた公的な交 流が668年に再開されてから、700年までの約30年のあいだに、14名の新羅 學問僧の派遣が確認できること、さらに、新羅學問僧の明聰と觀智が新羅の 師友に贈る賜物の存在が語るごとく、新羅學問僧を通じた新羅佛敎界との深 い交流があったこと、山田史御形の事例から分かるように、歸國後の國史(日 本書紀)編纂に関わるなど、新羅學問僧たちの多樣な役割を確認することが できた. 要するに、百濟に代表される三國から倭國へ派遣された僧と、統一新羅へ 送られた倭國の新羅學問僧の存在を通して確認される僧侶の役割や機能、 及び多樣な樣態は、倭國が中國へ派遣する隋・唐學問僧・學生の歷史的意 味を考察する上で、重要な示唆と手がかりを提供している. 以上の檢討を通じて、後期遣唐使に伴った入唐僧や入宋僧に対する綜合 的理解のための基礎的な知見を得ることができ、さらにこれに基づき、両者の 時代的背景及び派遣目的、政治文化や外交史上の役割、機能などの違い を比較檢討することができる、重要な土台が得られたといえるであろう. 何より も、僧の多樣な樣態を確認することによって、入唐僧・入宋僧の歷史的意味 を追求する貴重な手がかりが得られたという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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