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조계회수운동과 왕정위정부의 참전
The Chinese Movement for the Recovery of Concessions and the Wang Jing Wei Regime's Participation in th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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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반봉건, 반식민지사회로 전락하였으며, 따라서 조계의 회수와 불평등조약의 폐지는 근대 이래 독립자주의 국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중국의 민족적 염원이자 과제였다. 중국이 처음으로 자국내 조계를 회수할 수 있게 된 것은 1차대전 이후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 영미 등 연합국과의 연대를 선언한 중국이 전후 독일 및 오스트리아의 조계를 회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차대전 이후 중국은 치외법권조사위원회의 조직과 활동을 통해 조계의 회수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으며, 특히 남경국민정부의 수립은 조계 회수를 위한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해 공동조계에 밀접한 이해를 가진 영국과 만주 지역에서 배타적 이해를 독점하려는 일본의 반대에 직면하였으며, 결국 9․18만주사변과 만주국 수립 이후 조계 회수 운동은 일시 중지되었다. 그런데 중일전쟁 발발 이후 동아시아에서의 국제정세 변화는 조계 회수를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전략적 중요성에 비추어 미국과 영국은 대중국 유화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서 조계의 반환과 불평등조약의 폐지를 약속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일본은 왕정위정부에 조계의 반환과 불평등조약의 폐지를 약속함으로써 동정부의 참전을 유도하고, 나아가 중경국민정부가 주장해 온 조계회수의 열망을 왕정위정부로 하여금 실현하도록 함으로써 항일의 명분을 와해시키고자 기도하였다. 결국 아편전쟁 이후 조계 회수 운동과 불평등조약의 폐지는 중국의 국내적 요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Abstract
After the opium war, China fell into a semi-feudalistic and semi-colonial society resulting in a strong desire to push concession and demolish one-sided treaties; it aimed for a reconstruction towards an independent and self-reliant national state. The shift that has been drawn during World War I favored China and its goal to promote negotiations. Entering an alliance with U.K and U.S, China also looked into the possibility of attaining such concession between Germany and Austria as the war ends. The establishment of the ‘Nanjing Nationalist Government’ represents China’s efforts to encouraged their goal and it well served as a turning point for the movement. Nevertheless, it encountered opposition from the UK due to its interest in Shanghai International concession and as Japan tried to monopolize an exclusive interest in the Manchurian region, eventually realizing a full stop after the Manchurian incident and the foundation of Manchukuo. The changing trend in international politics in East Asia after the outbreak of Sino-Japanese war provided a new turning point for the recovery of concessions. Recognizing the strategic importance of China in East Asia, the U.S. and the U.K. adopted engagement policies toward China. Japan, on the other hand induced Wang Jing Wei regime to promote the common goal along with the Chongquing Nationalist Government. Brought by collective efforts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he movement for concessions and the goal to put an end to inequalities prove to be triumph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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