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立巖 閔齊仁의 敎育思想

立巖閔齊仁の敎育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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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철학

초록

동몽선습의 원저자로 거론되는 입암(立巖) 민제인(閔齊仁)은 가계와 학맥 어느 것으로 보든 사림파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문약한 사림만이 아니라 문무겸전한 사림의 풍모가 있었으며, 사림부양(士林扶養)을 위해 깊이 유념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민제인이 동몽선습을 저술한 시기는 계속되는 사화(士禍)로 신진사류의 기세가 꺾이고, 심지어 소학을 기휘(忌諱)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신진사류들은 금기시되는 소학이 아니면서 소학과 같은 이념의 세계를 지향하는 새로운 교재를 생각하게 되었다. 민제인 등이 동몽선습을 저술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다. 조선초기의 신진사류는 소학 교과를 중시하였다. 소학은 효를 중심으로 하는 오륜의 실천과 그 사회적 확산, 보급을 강조하는 신진사류의 필독서였다. 민제인 또한 신진사류에 속하기도 하거니와, 동몽선습 자체가 소학을 대신하는 교재로 저술된 것인만큼 당시 신진사류의 교육이념을 집약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민제인의 생애를 보면 그가 자상온아(仔詳溫雅)한 교육자의 풍모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교육자적 풍모가 피비린내 진동하는 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림들을 부양할 수 있었고, 나아가 삼세칠효(三世七孝)로 칭송되는 여흥민문(驪興閔門)의 영예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라고 본다. 민제인은 젊어서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 문하에 종유하였다. 한훤당은 실천을 강조한 소학동자론(小學童子論)으로 유명하다. 아마 이런 연유로 해서 그의 실천적인 학문관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민제인이 함경남도 병마절도사의 직임을 수행하는 과정이나 동몽선습의 사부(史部) 등을 보면 그의 실천지향적이고 실학적인 학문적 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크고 심각한 문제는 교육의 본질을 망각한 채 지식편향 교육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을 실천이 아닌 지식의 관점으로만 보게 되고, 그 결과 인성교육에는 실패하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민제인의 자상온아한 교육자로서의 삶과 그 영향을 받은 후손들의 삼세칠효의 광영(光榮)은 우리에게 교육의 본령이 무엇이며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어서 귀한 가르침을 제공하는 지남(指南)이 된다고 본다. 특히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것이다.

Abstract

童蒙先習の原著者として論じられる立巌閔齊仁は家系と学脈、いずれで見ても士林派に属する人物である。ところが文弱した 士林だけではなく、文武兼全した士林の風貌があったし、士林扶養のために深く念頭に留めおいたことと見える。 閔齊仁が童蒙先習を著わした時期は続く士禍で新進士類の勢いがくじけて、甚だしくは小学を忌み嫌う傾向まで現われるようになった。そして当時の新進士類たちはタブーする小学ではないのに小学のような理念の世界を指向する新しい教材を思うようになった。閔齊仁などが童蒙先習を著わしたことはこのような時代的要求に応じたのである。 朝鮮初期の新進士類は小学教科を重視した。小学は孝を中心にする五倫の実践とその社会的拡散、普及を強調する新進士類の必読書であった。閔齊仁もまた新進士類に属したりするが、童蒙先習自体が小学の代わりをする教材として著述されたから当時新進士類の教育理念を集約していると見える。 閔齊仁の生涯を見れば、彼が穏やかな教育者の風貌を持ったことが分かる。このような彼の教育者的風貌が血なまぐさい士禍の渦の中で、多くの士林たちを扶養することができたし、ひいては三世七孝だと称される驪興閔門の栄誉ができるようにしたことであろう。 閔齊仁は若いごろ、寒喧堂金宏弼門下に従遊したそうである。寒喧堂は実践を強調した小学童子論で有名である。多分こんなわけで、彼の実践的な学問観が形成されたはずである。もちろん以外にも閔齊仁が咸鏡南道兵馬節度使の職任を遂行する過程や童蒙先習の史部などを見れば、彼の実践 指向的で実学的な学問的傾向を汲み取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ろう。 われわれの教育の一番大きくて深刻な問題は教育の本質を忘却したまま知識にかたよった教育に沒頭しているという点である。そうしてみると教育を実践ではない知識の観点だけで見るようになり、その結果として人性教育には失敗す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この点で閔齊仁の穏やかな教育者としての人生と、その影響を受けた子孫たちの三世七孝の光栄は私たちに教育の本領がいったい何であり、いかに教育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かという点において、珍しい教えを提供する指南になると思われる。特に家庭教育の大切さを今一度悟らせてくれる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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