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라, 탁순과 임나 그리고 임나일본부-‘임나가라사’ 정립 序說-
A Study on Namgara, Taksoon and Imna and Imnailbon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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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종래의 ‘임나가라사’ 연구는 한국사의 ‘가야’와 일본사의 ‘임나’라는 듀얼리즘 인식이 상존하고, ‘임나일본부’의 실상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였다고 본다. 이들 문제에 대한 검토 결과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야'는 통일신라 이후의 명칭으로 신라가 532년 '임나(금관가야)'를 흡수하고, 562년 무력으로 '가라(대가야)'를 멸망시킨 후, 이들 지역을 '加耶'로 비칭하여 명명된 국명이기에 ‘임나가라’로 복원하여야 한다. 둘째, 탁순 창원설은 남가라를 김해로 오인한 결과이기에 탁순은 창원이나 대구가 아니라 김해의 금관국이다. 그 이유는 『일본서기』 欽明紀의 "군주가 혼자 항복하려고 신라에 내응하여 망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 “金官國 金仇亥 왕이 나라의 보물을 가지고 신라에 항복하였다”는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셋째, 6세기의 남가라는 7세기의 남가야가 아니고 탁순국 남쪽에 위치한 가덕도가 유력하다. 그 이유는 일본서기의 남가라 멸망 기록이 "몹시 작고 협소하여 불의의 습격에 대비할 수 없었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임나의 정의는 탁순과 남가라, 탁기탄 그리고 함안을 포함하는 남강 이남의 영역권으로 볼 수 있다. 다섯째, '任那日本府'는 8세기 『일본서기』 편찬 시점의 윤색 용어로 6세기 원형은 '任那倭宰'이며, 이는 임나가 왜와의 외교 및 교역을 위해 설치한 기관'이다. 따라서 이들의 실체는 倭의 사신이나 왜계 백제관료가 아니라 532년 신라에 의해 멸망한 조국 '임나(탁순)'를 되찾기 위해 任那復興運動을 전개한 탁순국의 신하들이다. 여섯째, 신라는 '임나(탁순)' 왕의 투항을 받은 532년을 '임나 멸망' 시점으로 인식하였고, 임나부흥군과 백제, 왜 등은 저항이 최종적으로 끝난 '가라(대가야)'의 멸망 시점인 562년을 '임나 멸망(부흥운동의 종결)'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관련 사료 해석의 혼란을 야기하였다. 끝으로 한국학계에서 ‘임나가라’가 아니라, ‘가야’라는 국명을 사용한 이유는 첫째, 『삼국사기』의 통일신라와 고려사관에 매몰된 탓이며, 둘째는 『일본서기』의 해독과 이해 부족, 셋째, 戰前 일본학계의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트라우마 즉, 임나일본부를 왜와 관련시키는 잘못된 해석에 대해 논리적인 사료의 재해석과 반론 그리고 방대한 연구사에 대한 오류를 지적,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되며, 넷째는 신라인이 되고자 했던 ‘任那王族’출신의 김유신 가문의 임나 부정도 한몫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Abstract
In the conventional 'Gaya-sa(加耶史)', the dualism perception of 'Gaya' and 'Imna' existed. It is necessary to review the reality of the 'Imnailbonbu(任那日本府)'. The results of the review on this issue are as follows. First, Gaya was the national name created by the unified Silla Kingdom. It was called Gaya after Silla destroyed Imna in 532 and Gara in 562. Therefore, Gaya's national name should be restored to ‘Imnagara(任那加羅)’. Second, Taksunguk(卓淳國) is Gimhae, not Changwon. This is because NihonShoki(日本書紀)and SamgukSagi(三國史記)'s records of their destruction match. Third, Namgara(南加羅) is not Namgara(南加耶). I think it is Gadeok(加德) Island, located in the south of Taksunguk. Fourth, the scope of Imra-guk(任那國) includes Taksun, Namgara, Takgitan(㖨己呑), and Haman(咸安). Fifth, 'Imnailbonbu(任那日本府)' is an incorrect term from the 8th century, and the original form from the 6th century is 'Imnawaeje(任那倭宰)'. This is an organization created by Imna for diplomacy with Wae(倭). Therefore, they are not envoys of Wae. They are a force to recover 'Imna', which was destroyed by Silla. Sixth, Silla recognized the collapse of Imna as 532. However, Baekje and Japan recognized 562, the time of the fall of Gara, as the fall of Imna. There are the following reasons why Korea used the national name of 'Gaya' instead of 'Imnagara'. First, it was buried in the unified Silla and Goryeo view of the Samguk Sagi. The second is the lack of understanding and decoding of the NihonShoki. Third, I think it is because it was not possible to logically respond to the wrong interpretation of the 'Imnailbonb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