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한국전쟁 직전 북한공군의 실제전력 연구 -비행사단의 병력과 무기 현황을 중심으로 -

A study on Actual power of the Air Force of North Korea before the Korean War -Focused on the force and weapon status of the Flight Division-

0

조회

0

다운로드

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북한 공군은 1949년 12월에 창설되었다. 비행사단의 병력은 1951년 1월 2일 2,603명으로 시작해 한국전쟁 직전에는 4,135명으로 증원되었다. 비행사단에서 병력이 가장 많이 배치된 곳은 기술대대였고, 다음은 교도연대, 습격기연대, 추격기연대였다. 사단 직속기구 중에서는 수리소에 가장 많은 병력이 배치되었다. 개전직전에는 폭격임무를 수행하는 습격기연대의 병력을 추격기연대의 두 배로 증원하였다. 추격기연대ㆍ습격기연대ㆍ사단본부에는 군관을 집중배치하고, 병사는 최소인원만 배치했다. 기술부대에는 경비업무를 위해 병사를 가장 많이 배치하고 비행기 수리작업에 필요한 기술하사관을 많이 배치했다. 교도연대에는 학생(병사)을 가장 많이 배치하고, 교육을 담당할 군관을 많이 배치하였다. 수리소에는 비행기 수리작업에 필요한 기술하사관을 가장 많이 배치했다. 1950년 6월 25일 현재 비행사단이 보유한 비행기는 총 226대였다. 비행사단은 1950년 2월 22일까지 180명의 비행사를 배출했으며, 개전 직전까지 보유한 전투기만큼의 비행사를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행사의 83%는 비행훈련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속성과정을 졸업한 병력이었다. 따라서 비행사의 전투력 자체가 부실했을 뿐 아니라, 예비 비행사도 없었다. 또한, 비행사단이 보유한 습격기 113대중 21대와 추격기 84대중 33대는 중고비행기였다. YAK-9기의 예비부품은 15~20%, IL-10기의 예비부품은 50%만 확보하고 있었다. 비생사단은 개전 직전까지도 노후기종의 잦은 고장문제와 예비부품 부족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또한 사단소유 장비 수리기재를 대부분 개인상점에서 조달하고 있었으므로 개전시 수리기재의 공급에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인민군은 사단규모의 공군력을 보유하고 개전에 돌입했지만, 공군의 실제전력은 현격히 떨어졌다. 비행사단은 비행기의 성능과 상태, 비행사 보유인원과 전투력, 예비부품의 보유량, 장비수리 기재 등 전투를 지속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전력요소를 완비하지 못했다. 또한, 비행사단은 1950년 1월 28일까지 편제인원의 63%만 충원된 상태였다. 특히 전쟁수행에 필수적인 참모간부가 28.3%만 충원된 것은 비행사단의 전력에 심각한 문제였다. 게다가 개전 당시 사단병력의 29%는 배치된지 4개월밖에 안된 신병이었다. 비행사단은 개전 당시 남한 공군에 비해 9.7배의 비행기를 보유하고 참전했으나,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전력요소들은 갖추지 못했다. 사실 비행사단은 완편된 정규 공군이 아니라 정규 공군으로 창설되는 과정에서 전쟁에 투입되었다. 결국, 비행사단은 정규전력과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전력요소를 갖추지 못한 채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이것이 북한 공군이 한국전쟁 초기에 궤멸된 내부적 요인이다.

Abstract

The Air Force of North Korea was established in December, 1949. There had been 4,135 soldiers in the flight division right before the Korean War. Among all troops in the flight division, the technical battalion had the greatest number of soldiers and the training regiment was the next. Then the fighter-bombers and the fighter Regiment were in sequence. Under the direct command of the Flight Division, the repair section had the most. 60% of officers in the flight division were intensively deployed in the combat unit and the training unit. 91.8% of sergeants were deployed in the combat unit, the training unit, and the technical unit. 75.7% of soldiers were heavily deployed in the technical unit and the training unit. In 1950 at the beginning of the Korean War the number of airplanes in the Flight Division was 226. The flight division produced 180 pilots by February 22, 1950. However 83% of the pilots only had 6 or 7 months of flight training. Therefore, the level of skill of the pilots was low and they had no alternative pilots. Moreover, 21 of 113 fighter-bombers and 33 of 84 fighter-planes of the Flight Division were second hand planes. Until the time of the Korean War the flight division didn't solve problems such as the malfunction of the decrepit planes and lack of spare parts. Fighting power of the flight division had been builded up through weapons from the Soviet Union since 1950. Nevertheless, the flight division still had a lot of problems in terms of actual power. The flight division couldn't prepare supporting elements of force integration such as planes, pilots and spare parts. And only 63% of a full strength were recruited to the flight division by January 28, 1950. Especially, the fact that only 28.3% of staff officers were recruited to the flight division was a serious problem. And at the time of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29% of soldiers in the flight division were new recruits who had been deployed 4 months before. The flight division had 9.7 times more planes than the Air Force of South Korea at the beginning of the war, but much less than the Air Force of U.S.A. Finally the Flight Division was engaged in warfare with no prepared regular power. And it was an internal cause of the Air Force of North Korea's failure in the earlier part of the Korean War.

참고문헌 (25)

  1.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ㆍ25전쟁사 1", pp.296~297 (2004),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 공군본부 정훈감실, "空軍史 제1집" (1962), 공군본부
  3.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1-해방과 건군" (1967),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4. 육군본부 군사연구실, "창군전사" (1979), 육군본부
  5.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 ․ 25전쟁사 1" (2004),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 장준익, "북한인민군대사", pp.34~37 (1991), 서문당
  7. 최완규, "조선인민군의 형성과 발전, In 북한체제의 수립과정", pp.139~176 (1991),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8. 김용현, "북한 인민군대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 만주사변-한국전쟁 이전을 중심으로", 석사, 정치학, pp.1994
  9. 김광수, "한국전쟁 전반기 북한의 전쟁수행 연구 : 전략, 작전지휘 및 동맹관계", 박사, 군사안보, pp.2008
  10.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ㆍ25전쟁사 2", pp.747~ (2005),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11. "한글용어사전, In 군사용어해설", 합동참모본부[URL]
  12. 김선호, "북한 공군 창설과정을 통해 본 식민지 유산의 연속과 단절", 현대북한연구, 15(2), pp.249~294 (2012), 북한미시연구소[DOI]
  13. 바자노프ㆍ바자노바, "쉬띄꼬프가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1949.5.1), In 소련의 자료로 본 한국전쟁의 전말", pp.69~70 (1998), 열림
  14. 토르쿠노프,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 pp.134~135 (2003), 에디터
  15. "(비밀) 개인비행수첩: 최현옥, 제855군부대, NARA, RG 242, SA 2007, Box 8, Item 13E. 이활의 직책은『개인비행수첩』", ~
  16. 제56추격기련대 참모부, "번호 및 대호규정에 관하여(1950.1.17), 제二대대,『(극비)상부지시문철』, 1950.5, NARA, RG 242, SA 2010, Box 3, Item 164", ~ (1950)
  17. 제845부대장, "일보표(1950.1.3), 師團대열과,『日報』", ~ (1950)
  18. 소련군 총참모부 작전총국, "1950년 6월 25일 현재 조선인민군과 남조선 국군의 전력현황(1951.12.3),『한국전쟁, 문서와 자료, 1950~1953년』", 국사편찬위원회, 60~ (2006)
  19. "주북한 소련대사가 소련 내각회의 의장에게 보낸 보고(1949.9.15)", 국사편찬위원회, ~ (1949)
  20. 敎導聯隊, "戰鬪日報", 1950.4.25, NARA, RG 242, SA 2007, Box 10, Item 39, ~ (1950)
  21. 김일현, "비밀(No.1) : 중대정전기계부분 고장과 불완전작업 통계부, 추격기연대 제2대대 지휘중대", 1950.6.21, NARA, RG 242, SA 2007, Box 8, Item 63, ~ (1950)
  22. 리화천, "자동차순보통계표 (1950.5.19)", ~ (1950)
  23. 김두히, "3월분 자금신청보고서", 1950.6.7, NARA, RG 242, SA 2009, Box 4, Item 142, ~ (1950)
  24. 리화천, "월말자동차종합통계표 (1950.6.7)", 제871군부대 자동차중대장, ~ (1950)
  25. 이정하, "미하일 프룬제의 군사사상과 총력전 구상", 서양사연구, pp.134~ (2001), 한국서양사연구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1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