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이후 朝明 비밀접촉의 전개
Secretive Contacts between Joseon and the Ming Dynasty after the Second Manchu Invasion of Joseon in 1637
0
조회
0
다운로드
1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대외관계는 대명관계에서 대청관계로의 전환 과정을 중심으로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명은 1637년 이후에도 1644년까지 건재하였으며, 조선과 명 사이의 공식 접촉은 단절되었으나 해상 밀무역로를 통한 비공식 접촉은 명의 멸망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본고는 병자호란 이후 이루어진 조선과 명의 비밀접촉 과정을 추적하고 그 배경을 살펴보았다. 병자호란 이후 朝明 비밀접촉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해볼 수 있다. 첫 시기인 병자호란 직후에는 明將 陳洪範이 椵島 東江津을 대신할 새로운 군사기지 건설을 모색하면서 조선을 회유하고자 하였다. 조선 조정은 그의 관심에는 감사를 표하고 패전한 상황을 알렸으나 그의 요구사항 및 향후 추가적인 접촉을 거부하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조선이 명 공격을 위한 징병 압박을 받던 시기로, 조선은 청의 압력에 대응하여 獨步를 밀사로 파견해 명과의 접촉을 타진하고 조선의 출병이 부득이한 상황에서 이루어졌음을 알리고자 하였다. 세 번째 시기는 명이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조선과의 군사적 연결을 추구하던 시기였다. 조선은 표면적으로는 명의 접촉을 환대하면서도 군사적 협력에는 응하지 않으려 하였다. 1642년 청이 錦州・松山 전투에서 승리하고 양국의 비밀접촉 실상을 파악하자 朝明 양국에서 비밀접촉을 추진하던 인물들이 실각하거나 제거됨으로써 朝明 비밀접촉이 최종적으로 좌절되게 된다. 명에게 조선과의 비밀접촉이 여러 가지 외교・군사적 대안 중 하나였던 데 비해, 조선 조정의 입장에서 명과의 비밀접촉은 이념적으로 대명의리를 실천하는 하나의 방도이자 명청전쟁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현실적 방책이기도 하였다. 명의 목적이 조선의 군사적 협력을 끌어내는 데 있었다면, 조선의 목적은 명에 조선의 부득이한 상황을 양해받는 데 있었다. 따라서 양국의 비밀접촉은 동상이몽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한편 朝明 비밀접촉은 황해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던 밀무역 네트워크를 통해 전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양국 조정의 의지는 현장의 행위자들의 현실적, 경제적 목적에 따라 변형되었고, 이는 비밀접촉의 전개 자체에 영향을 끼쳤다.
Abstract
Previous works on Joseon’s foreign relations have focused on Joseon’s response to the Ming-Qing transition. In the course, the year of 1637, when the Qing dynasty subjugated Joseon, was regarded as a turning point. However, the Ming dynasty had not perished until 1644, and unofficial contacts between Joseon and the Ming dynasty through the smuggling route across the Yellow Sea continued even after their official relationship was cut off. Secret contacts between Joseon and the Ming dynasty can be divided into three phases. During the first phase(1637-1638), Ming admiral Chen Hongfan(陳洪範) tried to appease Joseon in order to get Joseon’s cooperation on his attempt to construct a new military base on the Yellow Sea, which would replace destroyed Dongjiangzhen(東江鎭) Garrison on Gado(椵島) Island. The Joseon court appreciated his sympathy for Joseon’s difficult situation, but denied his demands and rejected future contacts from him. For the second phase(1638-1640), the Qing dynasty ordered Joseon to send its troops to attack Ming territory. In response, Joseon sent the monk Dokbo(獨步) as a secret envoy to Ming to inform that Joseon inevitably had to send soldiers for Qing’s aid. The third phase(1640-1644) was composed of two sub-phase. From 1640 to 1642, Ming dispatched its navy to Joseon for three times to gain Joseon’s military support. Joseon ostensibly welcomed Ming officials but rejected any urge of military cooperation. From 1642 to 1644, the Qing dynasty noticed the secretive contacts and cracked down on Joseon. Meanwhile, the agents of secret contacts got arrested and removed from power in both countries. Thereafter, secretive contacts between the two countries were cut off to the end of the Ming dynasty. While secretive contacts with Joseon was just a diplomatic and military choice to Ming, for Joseon they were an ideological way to practice its moral obligation to the Ming dynasty(對明義理) and a realistic policy to guarantee its survival in unpredictable chaos of the war between Ming and Qing. Ming’s goal was to acquire Joseon’s military support, whereas Joseon only wanted the Ming dynasty to understand its inevitable situation. Thus, secret contacts between the two states naturally ended in vain. Meanwhile, secretive contacts between Joseon and the Ming dynasty made possible by smuggling network across the Yellow Sea. In the process, the will of the two central governments had to be filtered and distorted by the agents with their own personal and economic aims. As a result, their participation affected the course of the secretive contacts.
참고문헌 (64)
- "인조실록", ~
- 趙翼, "卄二史箚記 卷35, 萬曆中礦稅之害", 797~
- 趙翼, "卄二史箚記校證 下", pp.806~ (1984), 中華書局
- Timothy Brook, "The Troubled Empire : China in the Yuan and Ming dynasties", pp.242~ (2010),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 杉山淸彦, "清朝とは何か", pp.87~88 (2009), 藤原書店
- 한명기,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2009), 푸른역사
- 한명기, "조선의 통치철학" (2010), 푸른역사
- 오수창, "청과의 외교 실상과 병자호란", 한국사시민강좌, 36, pp.119~ (2005)
- 허태구, "崔鳴吉의 主和論과 對明義理", 한국사연구, (162), pp.87~122 (2013), 한국사연구회
- 劉家駒, "淸朝初期的中韓關係" (1986), 文史哲出版社
- 寺内威太郎, "17世紀前半の朝中関係の一齣: 第2次瀋獄を中心に", 駿台史学, 96 (1996)
- 王剛, "明末王武緯出使朝鮮與‘聯鮮圖奴’之議", 溫州大學學報(社會科學版) (2011)
- "同文彙考 別編", ~
- "승정원일기", ~
- 凌義渠, "奏牘"
- "國榷" (1958), 中華書局
- 楊嗣昌, "楊文弱先生集"
- 金堉, "潛谷遺稿 卷14, 朝京日錄", ~
- 劉建新, "一六三七年明淸皮島之戰", 歷史檔案 (1982)
- "通文館志 紀年 仁祖大王 15년 丁丑", ~
- 이영춘, "丙子胡亂 전후의 朝鮮明淸 관계와 金堉의 朝京日錄", 조선시대사학보, (38), pp.79~125 (2006), 조선시대사학회
- JIN YINGSHU, "明末의 中國社會와 朝鮮使臣의 外交活動 ― 金堉의 「朝京日錄」과 「朝天錄」의 분석을 중심으로 ―", 명청사연구, (31), pp.67~107 (2009), 명청사학회
- 조창록, "1636년의 해로 사행과 李晩榮의 『崇禎丙子朝天錄』", 인문과학, (47), pp.81~100 (2011), 인문학연구원
- 金堉, "朝天錄", pp.430~431
- 李植, "澤堂集 卷7", ~
- 張存武, "淸代中韓關係論文集" (1987), 臺灣商務印書館
- 李晩榮, "雪海遺稿 卷3, 崇禎丙子朝天錄, 丁丑 5월 4일", ~
- 李超, "楊嗣昌軍事策略研究", 碩士, pp.2012
- "瀋陽狀啓", ~
- "鄭泰齊史草"
- "清史稿 卷234, 列傳21, 沈志祥", 9417~
- "中國明朝檔案總匯 29", ~
- "淸太宗實錄", ~
- 한국고전번역원, "대동야승 8"
- "譯官上言謄錄", 奎 12963, ~
- "비변사등록", ~
- "野言記略 卷2"
- 辻大和, "丙子の乱後朝鮮の対清貿易について", 内陸アジア史研究, 30, pp.16~17 (2015)
- 閻崇年, "淸朝通史‧太宗朝" (2002), 紫禁城出版社
- 張德信, "明代職官年表 1" (2009), 黃山書社
- "明淸史料 乙編", ~
- 沈悅, "南坡相國集 卷3, 箚, 戶曹判書時箚(戊寅七月)", ~
- "春坡堂日月錄 卷14, 仁祖大王實錄 下, 인조 16년 7월 기사", 국립중앙도서관 古2150-35, ~
- 趙絅, "龍洲遺稿 卷6, 疏, 辭司諫疏", ~
- 鄭太和, "陽坡年紀(『大東稗林』 32)", ~
- 羅萬甲, "丙子錄", pp.323~ (1985), 삼경당
- 寺内威太郎, "沈器遠の反乱と朝中関係", 駿台史學, 133 (2008)
- 桑野栄治, "朝鮮仁祖代における対明遥拝儀禮の変容: 明清交替期の朝鮮", 比較日本学教育研究センター研究年報, 12, pp.176~187 (2016)
- 허태구, "丙子胡亂 이해의 새로운 시각과 전망- 胡亂期 斥和論의 성격과 그에 대한 맥락적 이해 -", 규장각, (47), pp.163~200 (2015),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金坽, "溪巖日錄 八"
- 조경, "용주간독" (2015), 동국문화
- 하정식, "태평천국과 조선왕조" (2008), 지식산업사
- 이재경, "三藩의 亂 전후(1674~1684) 조선의 정보수집과 정세인식", 韓國史論, 60 (2014)
- 金尙憲, "淸陰集 卷21, 請勿助兵瀋陽疏(己卯十二月)", ~
- 김태훈, "병자호란 이후 倭情咨文의 전략적 의미", 한일관계사연구, (50), pp.175~215 (2015), 한일관계사학회
- 김태훈, "인조대 전반기 국제정세 변화와 대일정책", 한일관계사연구, (55), pp.113~154 (2016), 한일관계사학회
- "仁祖戊寅史草"
- 洪瑞鳳, "鶴谷集 卷7, 補遺, 陳西路物情箚", ~
- 정병철, "明末 遼東 沿海 일대의 ‘海上勢力’", 명청사연구, (23), pp.143~170 (2005), 명청사학회
- 姜碩期, "月塘集 卷2, 疏箚, 密箚(因筵對未及上)", ~
- 辻大和, "朝鮮の対後金貿易政策", アジア遊学, 179 (2015)
- 劉琳, "仁祖前期(1623-1637)以朝鮮爲中心的東亞國際潛貿易", 朝鮮·韓國歷史研究, 17 (2016)
- "효종실록 권19", ~
- "숙종실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