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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安京の變容と中世初期政權都市要旨

헤이안쿄[平安京]의 변용과 중세 초기 정권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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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本稿は, 中世都市硏究の視点から, 都城平安京が中世京都へ變化する契機とその意味, それが꽊新たな武家の政權都市にどのような影響を與えたのかについて,じた. 律令制最後の都城平安京は, 天皇を絶對頂点とする中央集權が同心円構造に具現された「王城の地」であったが, 10世紀後半以,.都城の求心点であった內裏が平安宮からでるなどの變化が始まり,都城の理念と舒組みが急速に形骸化, 變容した, また古代王權に代わり新たな形で王權や諸權力を擔った院や攝關家, 臺頭する武家權力などが, その本據地に權力の個性や時代性を反映した新たな景觀と空間原理を生んだ. それは次の共通点をもつ, ①大きな淨土庭園をもつ御堂(寺院)とセットになった御所 ②皇統(天皇家內の系統)や家筋の象徵として祖先を祀る墳墓を中心にした都市形成, ③內裏を起点に南, に主軸をもつ古代都城と굋なり, 御堂と御所が東西に竝ぶ東西街, を主軸にした都市計畵, ④京と外部との交通の結節点に立地, 特に水邊に積極的に展開された都市. 日本の中世は武家政權の時代をむかえ 東國の初期武家政權の本據平泉や最初の幕府が開かれた鎌倉が モデルとしたのは「都城平安京」ではなく. 平安京の京外の新都市の景觀と空間原理であった. 特に平泉や鎌倉などが,家政機關と祖先墓を中心にした「イエ原理」による政權都市を積極的に受容したのは單なる都の模倣ではなく主從關係を軸に擬制的なイエの原理で權力が形成される武家にはもっとも相應しい理でありまた古代とは,なる新しい時代の理であったからである.その一方で武家の棟梁として武士達によって推戴された初期の武家政權は,都の理や景觀を導入しただけではなく彼らとの共通の價値觀を表現することも重要な要素であった,それが,最新の都模倣の御堂とそれとは對照的な東國武家の傳統的な御所の竝立という,宗敎空間と政治·日常空間における權威表徵の意識的な使い分けによって表現された. 平泉や鎌倉では,流通商工業などの都市機能や都市的な景觀が整備されるまでに約50年の時間經過が必要であった12世紀の日本の武家政權は自らの據点として都市を企畵,形成する意識と實現する能力をどれほどもっていたのか檢討が必要である明確な東アジアモデルの都城を實現することにより王權の存在を示した古代律令政權との違いは大きい. この後,武家が權力の意圖を都市構造として明確に示すのは,15世紀後半の戰國大名の城下町からである,特に16世紀後半から天下統一を實現する織田信長,豊臣秀吉の織豊政權においては,具體的な城や城を中心とした階層性を明示した城下町の空間設計があった,ここでは再び「都市の景觀」が明確な權力の象徵として機能することになっていくのである.

Abstract

본고는 중세도시연구의 관점에서 도성 헤이안쿄(平安京)가 중세 교토(京都)로 변화하는 계기와 그 의미, 그것이 새로운 武家政權都市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하여 논하였다. 율령제 마지막 도성인 헤이안쿄는 천황을 절대적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이 동심원구조로 구현된‘王城의 땅’이었으나, 10세기 후반 이후 도성의 구심점이었던 內裏가 헤이안큐(平安宮) 밖으로 나오는 등의 변화가 시작되었고,도성의 이념과 틀이 급속하게 해체·변용되었다. 또 고대왕권을 대신하여 새로운 형태로 왕권과 여러 권력을 담당한 院과 瀧關家, 대두하는 무가권력 등이 그 본거지에 권력의 개성과 시대성을 반영한 새로운 경관과 공간원리를 생성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는다. ① 큰 정토정원을 갖는 御堂(사찰)과 세트를 이룬 御所(천황의 거소). ②황통(천황가 내의 계통)과 가족의 상징으로서 조상을 모신 분묘를 중심으로 한 도시형성. ③ 내리를 기점으로 남북으로 주축을 갖는 고대도성과 달리, 어당과 어소가 동서로 배열된 동서가로를 주축으로 한 도시계획. ④ 수도와 외부를 잇는 교통의 결절점에 입지하였고, 특히 하천변을 향해 적극적으로 확장된 도시. 일본 중세는 무가정권의 시대를 맞이하여 도고쿠(東國) 초기 무가정권의 본거지 히라이즈미(平泉)와 최초의 막부가 열린 가마쿠라(鎌倉)가 모델로 한 것은‘도성 헤이안큐’가 아니라 헤이안큐 수도 밖 신도시의 경관과 공간원리였다. 특히 히라이즈미와 가마쿠라 등이 家政機關과 조상의 묘를 중심으로 한‘가족 원리’에 따른 정권도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단순한 도시의 모방이 아니라 주종관계를 축으로 의제적인‘집(家) 원리’로 권력이 형성된 무가에는 더욱 어울리는 논리이며, 또 고대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그 한편으로 무가의 대들보로서 무사들에 의해 추대된 초기 무가정권은 도시의 논리와 경관을 도입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과 공통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였다. 그것이 최신의 도시를 모방한 어당과, 그것과는 대조적인 도고쿠 무가의전통적인 어소의 병립이라는 종교공간과 정치·일상공간에서의 권위표상의 의식적인 분리에 의해 표현되었다. 히라이즈미와 가마쿠라에서는 유통, 상공업 등의 도시기능과 도시적인 경관이 정비되기까지 약 50년의 시간이 경과할 필요가 있었다. 12세기 일본의 무가정권은 스스로의 거점으로서 도시를 기획, 형성하는 의식과 실현하는 능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가 검토가 필요하다. 명확한 동아시아모델의 도성을 실현함으로써 왕권의 존재를드러낸 고대 율령정권과의 차이점은 매우 크다. 이후 무가가 권력의 의도를 도시구조로서 명확하게 드러낸 것은 15세기 후반의 전국시대 다이묘(大名)의 죠카마치(城下町)로부터이다. 특히 16세기 후반부터 천하통일을 실현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연합정권에서는 구체적인 城과, 그 성을 중심으로 한 계층성을 명시한 죠카마치의 공간설계가 있었다. 여기서는 다시금‘도시의 경관’이 명확한 권력의 상징으로서 기능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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