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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기독학생운동의 발전과 한국선교, 1889~1942

Australian Student Christian Movement and Korean Mission, 1889~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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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는 1889~1942년 한국에 왔던 호주장로교선교사들 중에 학생자원운동(SVM) 출신들에 대해 호주사회의 세속주의 태도와 호주기독학생운동(ASCM)이 끼친 영향을 검토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우선 이 연구는 세속주의 태도, 전통적인 복음주의 신학에 대한 그 도전, 그 도전에 대한 빅토리아 장로교회의 대응을 검토했다. 두 번째로, ASCM의 역사를 그 신학적 변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검토했다. 세 번째, SVM의 역사를 살폈고, 네 번째로 한국선교지에 대한 SVM출신 선교사들의 공헌을 살펴보았다.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세속주의 태도의 성장은 국가보조금과 관련된 교파분쟁에 대한 거부감, 교파학교에 대한 혐오, 그리고 반성직자주의와 종교적 무관심의 확장, 자발주의의 성장, 과학의 발견과 역사이론, 종교적 자유주의의 성장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이러한 세속주의 태도는 호주기독교가 국가교회와 국가보조금에 대한 철폐를 통해 법률적 종교적 평등을 받아들이고, 노동자 계층과 사회적 소외자들 그리고 에큐메니즘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강요했다. 과학적 발견과 신학적 자유주의의 보수적인 장로교 복음주의에 도전했고 빅토리아 장로교회 신학의 변화는 서서히 복음주의-에큐메니칼 형식으로 움직여갔다.그러한 강력한 세속주의적 상황 안에서 ASCM은 교파적 영역을 넘어서 에큐메니칼 풀을 형성하고, 호주기독교 안에 새로운 성서 이해와 국제적 에큐메니즘을 도입했고, 교회와 사회를 향해 그들의 신앙을 증거했다. ASCM은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을 배출하고 복음주의-에큐메니칼 기독교와 선교사역을 발전시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과 이어지는 신학적 자유주의의 영향력은 학생들의 선교열정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ASCM의 에큐메니칼-복음주의적 특색은 1920년대에 약화되었고, 1930년 학생운동이 SCM과 보수적인 복음주의 연합(Ecumenical Union)으로 분열된 이후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빅토리아 장로교회는 호주교회 안에서 가장 많은 수의 SVM 선교사들을 배출했다. 그것은 빅토리아장로교회의 고학력전통, 좋은 경제적 조건, 해외선교책임자 프랭크 패튼(Frank Paton)의 야심 있는 선교정책에서 기인했다. 한국에 온 SCM 출신 선교사는 20명이고 그중에 16명은 SVM 자원자들이었다. 그들의 많은 수가 목사의 자녀이거나 복음주의 중산층에서 성장했다. 그들은 복음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SCM을 통해 신학과 실천에 있어서 에큐메니칼 경험을 배웠다. 그들은 다른 선교사들보다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을 한국에 거주했고, ① 경남부산지방의 목회, 교육, 의료사역의 기초를 놓는 일, ② 토착 지도력을 훈련하는 일 ③ 선교정책들을 발전시키는 일에 특별한 공헌을 했다.

Abstract

Australian Student Christian Movement and Korean Mission, 1889~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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