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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 최흥종의 신앙노선과 선교활동

Obang Choi Heung-Jong's Faith and Missionary Activ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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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최흥종의 신앙노선과 선교활동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그의 신앙노선은 이채롭다. ‘오방’, ‘거세수술’, ‘사망통고서’ 등이 상징하듯 그는 무욕‧청빈을 실천하며 수도자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정치사회적 현실과 거리를 두지 않고 참여했다. 그리고 기성교단과 교역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분립’에는 반대했다는 점에서 이른바 ‘자치교회’, ‘자유교회’와는 차이가 있다. 또 무교회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평생 교회를 떠나지 않았고, 이세종‧이현필 등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만 전념한 이들과 달리 사회사업은 중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종교다원주의’의 경향도 띄게 되었다. 그의 선교활동은 복음선교‧의료선교‧교육선교‧사회선교 등 모든 영역에 두루 걸쳐 있었고, 비록 좌절되었지만 북간도 선교를 염원했고 시베리아‧제주도 선교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병자‧빈민‧걸인 등을 위한 헌신은 평생 지속했으며, 특히 구라선교에서 그의 위치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해방 전후 민족운동‧건국운동에서도 ‘좌우’ 양측을 아우르며 신망을 얻은 지도자였다.

Abstract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Choi Heung-jong's faith routes and missionary activities. His faith routes were unusual. As it was represented in his “Obang,” “castration operation,” and “notice of death,” his life resembled that of an ascetic based on the practice of no avarice and honest poverty. He did not distance himself from the political and social reality, taking active part in it. He criticized sharply the old religious bodies and workers and yet opposed to their “separation,” thus being different from the so-called “Autonomy Church” or “Freedom Church.” Although he was influenced by the non-church movement, he did not left the church until the end of his life. Unlike Lee Se-jong and Lee Hyeon-pil that were committed only to Bible study and training of pupils, he did not suspend his social work. At some point, he started to exhibit the tendency of “religious pluralism.” His missionary activities encompassed all the areas evenly including the gospel, medicine, education, and social missionary works. He had a wish to do missionary works in North Gando, but his wish did not come true. He also left a huge mark in the missionary work of Siberia and Jeju Island. His devotion to the invalid, the poor, and beggars continued throughout his life. His position was especially unrivaled in the missionary work of leprosy relief. He was a leader that earned trust both from the “left and right wings” in the national movement and the national foundation movement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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