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조제암의 역사 복원 시고
A Study on the Historical Restoration of Goseong Jojeam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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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민통선 내에 위치하였던 고성 조제암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한 연구이다. 조제암은 본사인 건봉사와 남북 분단 이후 민통선 지대에 위치하여 관심을 별로 갖지 못하였다. 본사인 건봉사는 일제강점기 31본산의 큰 사찰로 사명 유정의 진신사리 봉안과 더불어 현대에 들어와 주목을 받아 복원되었으나 조제암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조제암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만해 한용운과 건봉사 주지 대련 덕문이 『건봉사지』를 편찬하면서 간략한 연혁이 정리되었다. 그 가운데 진표와 나옹, 세조 관련 금강산과 관동 일대의 제기록을 통해 조제암의 근세이전의 역사를 입증하고자 하였지만 사실로 인정될 개연성이 높다. 조선후기 이후 조제암의 역사는 제 읍지류와 불교 지리지류, 그리고 『혼원집』의 중건기에 의해 간략하나마 대략적인 역사를 조망할 수 있으며, 특히 청허 휴정의 문손인 극암 사성과 문도(문손)들이 조제암에 주석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몇 건에 지나지 않지만 유자들의 문집류에 단편적인 관련 기록들로 조제암의 당시 일면 사세를 엿볼 수 있다. 근대인 일제 강점기 사찰령하에 총독부 관보에 조제암의 주지 인가 관련 기록으로 조제암의 주지를 맡은 고승들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사찰령에 의하면 본사의 주지가 조제암의 주지를 겸무하였으며, 건봉사 주지로 인가 받은 후 조제암 주지가 선정되었던 듯하다. 총독부 관보에 조제암의 전각 규모와 토지 및 임야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조제암의 간략한 사세를 엿볼 수 있다. 조제암은 해방 후 건재하다가 6.25전쟁으로 폐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제암의 역사가 복원되고 금강산 길이 열리어 강원남북도와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Abstract
This paper is a study to restore the history of Goseong Jojeam Temple Hermitage, which was located within the Civilian Control Line. Jojeam Temple Hermitage was located in the civilian control line area after the division of Geonbongsa Temple, the headquarters, and the north-south division, so it was not very knowing. Geonbongsa Temple, the headquarters, is a large temple at the headquarters of Japanese colonial era 31, and was restored in modern times along with the enshrinement of Jinsinsari Temple in Monk Samyeong-Yujeong, but Jojeam Temple Hermitage did not receive much attention. As for the history of Jojeam Temple Hermitage, it can be said that Japanese colonial era Manhae Han Yong-woon and Daeryeon-Deokmun compiled Geonbongsaji and organized a brief history. It is difficult to trust at this time because the history of crude cancer organized by it is very later data. Therefore, this paper attempted to prove the history of Jojeam Temple's modern history through records of Geumgangsan Mountain and Gwandong area related to Monk Jinpyo, Monk Naong, and King Sejo. After the late Joseon Dynasty, the history of Jojeam Temple Hermitage can be seen briefly by the Eupji(Geography), Buddhist geography, and the reconstruction period of Honwonjip(collection of literary works), and in particular, it can be seen that Monk Geukam-Saseong and disciples of Monk Cheong-Heo were present at Jojeam Temple Hermitage. There are only a few other cases, but the records related to the literature and collection of citron provide a glimpse of Jojoam Temple's situation at the time. Modern Japanese occupation, the Governor-General in the official gazette Jojeam Temple not of the relevant records to a note of the Jojeam Temple a prelate who can know their information. According to the temple decree, the chief monk of the headquarters served as the chief mo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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