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Samuel Johnson's The History of Rasselas, Prince of Abyssinia: A Pilgrimage of Buddhists

0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주제분류영어와문학

초록

Abstract

기존 학자들은 새뮤엘 존슨을 기독교주의자나 도덕주의자로 이해해 왔다.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로서의 삶을 살았을 뿐만아니라 그의 글 자체에 기독교주의자와 도덕주의자의 색깔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그러한 관례적 인식을 깨고, 존슨의 소설 『아비스니아의 왕자 래슬리스의 방랑기』(1759)를 불교적 측면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래슬리스의 방랑여행은 불교 창시자인 시타르타의 그것과 무척 유사하다. 불교는 네팔 근처에 거주했던 샤키아종족의 왕자 시타르타로부터 시작된다. 시타르타는 왕자로서 물질적으로 풍족한 환경속에서 자라지만, 그는 생로병사에 대한 의문으로 번뇌한다. 아내의 출산고통을 목격한 그는 왕위 계승을 포기하고 생로병사의 원인을 찾아 순례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에 여러 스승을 만나지만, 그들은 시타르타의 선에 대한 열정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결국 6년간의 고독한 불도 끝에 스스로 득도하므로 유일의 부처가 된다. 부처가 된 시타르타는 불도제자를 위해 인간생사에 대한 "네가지의 진실"과 "여덟가지의 옳은 행위"를 교수한다.래슬리스 또한 사타르타처럼 행복의 계곡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는 아비스니아의 왕자이다. 왕자로서의 물질적 부와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행복의 계곡에서 벗어남으로써 선을 찾는 순례를 시작한다. 그 또한 여러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과의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정작 래슬리스가 열망하는 스승은 "여덟가지의 옳은 행위"를 통달한 부처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더불어 래슬리스의 여행은 부처의 "네가지의 진실"에 나타난 여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혹자는 존슨이 불교에 대한 지식을 가졌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존슨이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던 18세기에, 불교나라 중국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더 이상 생소한 나라가 아니었다. 이미 중국문화에 대한 책들이 프랑스 파리에 유통되고 있었고 런던에도 소개되어 있었다. 존슨이 편집인이었던 『신사를 위한 잡지』에 빈번한 기고가였던 볼테르도 중국에 관한 책을 펴낸이 중 하나였다. 존슨 스스로도 체임버경이 집필한 『중국건축』의 머리말을 쓰기도 하였다.이 논문의 목적은 존슨을 불교도인으로 재인식 또는 재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18세기 저명작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데 있다. 작가를 한 종교에만 국한시켜 이해하는 것은 작가의 역량을 독자의 한계에 제한시키는 위험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4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