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송도 기록에 나타난 개성 이미지의 형성 -고려의 수도에서 조선의 경기로-
Formation of Gaeseong Imagesin 17th Century Songdo Records -From the capital of Korea to the province of Cho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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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고려 500년의 수도였던 개성이 ‘수도 개성’에서 조선 건국 이후 경기 지역의 하나인 ‘지방 개성’으로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특히 그 시기로 임란 이후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기에 집중하였다. 조선 개국 이래 개성은 전 왕조의 수도, 곧 ‘구도(舊都)’의 이미지 속에서 새 왕조의 수도인 한양과 경쟁관계를 형성하는 한편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양가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임란과 병란을 거치면서 조선이 새롭게 재편되는 시기였던 17세기 들어와 개성은 이제 고려의 그림자를 벗어나 조선의 한 지역으로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갔다. 본고에서는 17세기에 편찬된 개성에 대한 기록물을 바탕으로, 그 안의 역사적 사실들이 삭제되고 추가되며 변개되는 모습을 추적하여, 시대와 계층에 따른 개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그 과정에서 형성된 후대의 개성 이미지와 전파에 대해 고찰하였다. ‘우창비왕설’ 비판과 ‘두문동 72현’에 대한 현창, 정몽주 순절 선죽교 기록의 확충, ‘송도삼절’과 ‘황진이’ 설화의 형성과 정착 등의 기록들에 주목하여, 17세기 들어와 개성의 이미지가 ‘충절’과 ‘풍류’ 공간으로 다시 형성되고 있음을 밝히었다.
Abstract
This article focused on the process of finding a new identity of Gaesong from the capital of Korea to the province of Choson. In particular, the period focused on the late 16th century and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Since the founding of the Choson Dynasty, Gaesong has established a double-sided image in the image of the capital of the former dynasty while maintaining a close relationship with Hanyang, the capital of the new dynasty. However, in the 17th century after the war(Imjin War), Gaeseong was not any more the capital of Korea, but created an image of Choson as a local place. Based on the records of Gaesong in the 17th century, this study examines the changes of Gaesong's image according to times and classes. Since the 17th century, it was revealed that Gaesong's image was re-formed into a space of Loyalty and Pl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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