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默齋日記』를 통해서 본 16세기 奴婢의 죽음과 喪葬禮
Death and the Funeral Rite of Servants in the 16th Century Revealed in Mukjae'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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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시대 사람들은 疾病의 원인을 厄이나 鬼神의 작용이라고 인식하였고, 이를 피하거나 달래고 쫓아내는 방식을 통해 병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는 특정 장소에 대한 터부를 통해 액을 피하고자 하는 避接 행위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처럼 질병을 피하고자 하는 관념은, 죽음의 경우에도 유사하게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 맞이하는 죽음을 가장 이상적으로 인식하였고, 심지어 親姻戚 집에서의 맞이한 죽음도 客死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奴主들은 때로 죽음을 앞둔 노비를 病幕으로 내보내 집 밖에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기도 했고, 이는 죽음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인식의 표현으로 생각된다. 한편, 당시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 절차가 가족 내부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랐고, 이후 고향에 安葬되기를 희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들의 바램은 草葬의 장례 형식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노주들은 소유노비의 장례를 초장보다 매장 방식으로 치르기를 선호하였다. 노비의 장례는 대부분 노주가 棺과 葬地를 마련해 주었고, 매우 짧은 기간에 치러졌다. 장례의 구체적 형식은 확인되지 않지만, 이들의 장례 역시 일정 정도의 격식을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Abstract
People in the Joseon era perceived that the cause of a disease was action of aek (misfortune) or ghosts and attempted to overcome the illness by evading, soothing, or driving it out. This was expressed by pijeop (an ill person adjourns to another place and convalesces) intending to evade misfortune through taboo about a certain place. Like this, the concept of attempting to avoid an illness was similarly applied to death as well. At the time, people recognized that death within one's family was most ideal and even death in a relative's home was considered as dying away from home. However, the owners of servants sent their servant to byeongmak (a house isolating a person contracting a contagious disease) and had the servant face death outside of their house and this is considered an expression of perception intending to maintain a certain distance from death. Meanwhile, servants as well wished their last procedure of life to be made within their family and anjang (comfortably holding a funeral) in their homeland thereafter. Such wish of theirs was expressed as a funeral form of chojang (covering the body with straw and burying it temporarily). Nonetheless, the owners of servants preferred burial to chojang as a funeral method. Mostly the owner of a servant provided a coffin and jangji (a land for funeral and burial of the body) for his or her funeral and it was done within a very short time. The specific form of the funeral was not verified but it is estimated that their funeral as well had a certain 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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