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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貞節 倫理의 실천자와 身分

Executors who have a fidelity morals and their Social Status during the Chos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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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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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ꡔ新增東國輿地勝覽ꡕ과 ꡔ輿地圖書ꡕ에 기재되어 있는 1,299인의 열녀의 신분을 검토하여, 조선시대 정절 윤리가 주로 어떤 신분층에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논문에서 밝힌 통계와 분석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열녀 가운데 73.8%인 959인이 양반 신분이었다. 양반 신분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가운데, 그 뒤를 상민(17.2%), 노비(4.7%), 중인(2.1%)의 순으로 잇고 있었다. 16세기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시간이 경과할 수록 양반 신분층의 열녀 비중은 높아져서 18세기에 이르면 전체 열녀의81.8%가 양반층이었다. 중인층과 노비층의 경우 전반적으로 그 숫자가 적었으며, 시대가 내려갈수록점유율 또한 하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던 상민의 경우 16세기에 24.6% 로 점유율이 이전 시기보다 무려 14.1% 가량 높아졌지만, 17세기에는 20.4%, 18세기에는 10.4%로 점차 점유율이 낮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열녀는 정절 이데올로기의 표상적 존재였다. 점차 양반층열녀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여성의 정절 숭배 이데올로기가 모든 신분층에게확산되어 갔다는 기존의 통설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16세기까지 조선 정부는 교화정책을 펴면서 일반 백성에게도 유교 윤리를 전파하려 했다. 그 결과16세기에 들어와 피지배층인 중인·상민·노비층의 열녀 점유율이 31%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16세기를예외로 하면, 조선 후기로 이행하면서 열녀의 양반 독점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조선후기 양반들은가문의 위상을 높이거나 피지배층과 자신을 구별하여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정절 이데올로기’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즉 정절 숭배 풍조는 여성의 성 정체성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양반들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무엇보다도 旌閭 등 유교적 포상을 받은 사실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양반층이 정부의 포상에 집착하게 되자 중인·상민·노비들의 열녀 점유율은 자연히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즉 조선후기에 들어와 충효열의 상징인 효자와 열녀는 권력의 상징으로 바뀌었고, 자연히 유교 윤리 또한 양반층에게 독점되어 갔던 것이다. 조사 결과 신분에 따라 ‘烈行’의 내용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음도 밝혀낼 수 있었다. 유교 윤리와신분과의 상호 관련성을 살피기 위해, 열녀들을 A형(守節型), B형(斷指·割股·割手型), C형(事件 抵抗 死亡型), D형(事件 對應 自殺型), E형(自發的 自殺型)의 5개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유교적 관점에서 볼 때, A형 열녀가 가장 소극적이고 B형, C형, D형, E형으로 진행될 수록 적극적이었다고 할 수있다. 양반층의 경우 거의 절반에 가까운 48.6%의 열녀가 남편이 죽자 따라 죽은 E형 열녀였다. E형 열녀의 비율은 양반, 상민, 노비 순으로 높았다. 그런데 E형과 정반대 유형인 A형 열녀의 비율은 노비, 상민, 양반의 순서였다. 즉 신분에 따라 열녀의 유형이 전혀 달랐던 것이다. A형은 단순한 수절만으로도 열녀로 인정받은 경우로, 양반층에 A형의 비율이 낮은 것은 양반층의 경우에는 단순한 수절만으로는 열녀가 되기 힘들었던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A형 열녀가 E형 열녀보다 많은 것으로나타나는 노비층은 양반에 비해 열녀로 선정되기가 쉬웠다고 할 수 있다. 선정되기 위한 조건이 상대적으로 까다롭지 않았어도, 노비층의 열녀는 많지 않았다. 노비는 소유물로 주인이나 사회로부터 性 正體性을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Abstract

This article is to study the influence of faithfulness morals on social status in the Choson period through analyzing 1,299 persons, who have a fidelity, listed on Sinjeungdonggukyeojiseungram and Yeojidoseo. The results of this study and its statistics summarize as follows. The 959 persons (73.8%) among the faithful woman of Choson dynasty were ‘Yangban’ which means aristocratic class. The majority of the faithful woman is ‘Yangban’. The next things are ordered by commoner (17.2%), servants (4.7%), and middle class (2.1%) in the Choson period. Excepting the 16th century, the rate of faithful woman of Choson dynasty is getting higher. In the 18th century, the 81.8% of among faithful woman was Yangban. In a case middle class and servants, the number of faithful woman had been small and its rate had been declining after the 18th century. The rate of faithful woman among commoner was 24.6%(16C), 20.4%(17C), and 10.4%(18C). In the 16th century, the rate of faithful woman was much higher than before the 16th century. After 17th century, the rate of faithful woman had been declining. The ideology of fidelity represented faithfulness woman had kept a thing exclusively to Yangban as time goes up the late of Choson dynasty. This fact is contrast to common theory that the ideology of worship of faithfulness woman had spread to whole classes as time goes up the late of Choson dynasty. The government of Choson dynasty had done to diffuse Confucian to common people through edification policy. The result of the policy, the rate of faithfulness woman among middle class, commoner, and servants was 31%. However, the faithfulness woman from Yanban had been outstanding during the late of Choson dynasty. The reason is that the Yangban of the late of Choson dynasty had used the ideology of fidelity as a tool in order to strength an honor to a family or get superior status distinguishing non-ruler. That is, the trend of fidelity worship is not limited on the identity of gender related to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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