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 19세기 懷德 宋村大同契 下契의 구성과 운영
The Organization and Operation of Hoeduk Songchon Daedonggye’s Hagye(懷德 宋村大同契 下契) in the 18th and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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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鄕約은 壬亂 이후 전반적인 사회 변화로 인해 기존의 郡縣단위에서 그 지역적 범위를 축소시켜 洞이나 里 단위의 洞契로서 주로 운영되었다. 이는 兩班으로 구성된 上契와 常賤으로 구성된 下契가 협력하여 참여하는 上下合契의 형태가 중심이었다. 현재까지 조선 후기의 동계 중 하계에 대한 기존 연구는 다소 미진하였다. 이는 대부분의 동계 자료에서 하계에 대한 기록이 생략되었거나 座目에서 하계원의 성씨만 간단하게 기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당시 하계에 대한 기재의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았거나, 훗날 하계원의 사회경제적 성장으로 인해 스스로의 흔적을 삭제한 이유 등으로 추정된다. 본 연구는 18․19세기의 忠淸道 懷德縣 內南面 宋村里에서 시행된 宋村大同契를 대상으로 하계의 구성과 운영을 분석하였다. 송촌대동계 자료는 일반적인 조선 후기 동계 자료들과 달리 하계원의 이름․생년․代入 및 追入년도․인원․직책 등 여러 정보가 기재되어 있어 그 사료적 가치가 크다. 송촌리는 본래 은진 송씨라는 특정 사족이 집성촌을 이룬 지역이었으나, 18세기 이후부터 신분질서의 동요로 지배계층의 구성이 복잡해지는 등 이전과 사회구조가 다르게 변화하였다. 이에 기존 재지사족들은 향촌사회 내 지배권의 유지 및 회복을 위해 里 단위로 향약의 규모를 축소하여 1739년 송촌대동계를 설립하였다. 이는 18세기 설립 때부터 19세기 말까지 상하합계의 형태를 유지하였고, 촌락 내 喪葬禮의 공동 진행을 위한 喪契의 기능을 강조하여 거주민을 하나로 묶는 기제로서 활용하였다. 당시 송촌대동계의 하계는 설립 목적에 따라 사족들로 구성된 상계에 피지배적인 관계로 지속되었다. 하계원의 주된 임무는 송촌리 내 상장례를 위한 喪物 준비와 契金 납부였고, 喪輿軍 혹은 造墓軍 등과 같은 부역꾼의 역할을 통해 주로 신체적 노동을 담당하였다. 또한 하계는 계원이 사망하거나 퇴출 등으로 부재 상태가 되면 가족 간의 대리자를 구해서 그 숫자를 유지하였는데, 이는 상장례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노동력의 보충으로 귀결되었다. 상계는 하계의 이탈을 방지하고자 때로는 엄하게 다스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상황에서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관리책을 시행하였다. 계원이 동계 내 규정을 위반했을 시, 신분의 한계로 인해 하계원은 상계원보다 더욱 엄하게 처벌을 받았다. 또한 하계원의 家勢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그에 맞게 적당한 계금을 거두며 운영하였는데, 이는 상천민의 사회적 성장에 따른 촌락의 동요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하계는 상계와의 관계에 대해 대체적으로 인정하고 수긍하는 형태를 보였으나, 간혹 자발적인 도망이나 규약 위반 등을 통해 현실을 회피하기도 하며 의무적인 동계 활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Abstract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regional scope of Joseon’s Hyangyak(鄕約) has been reduced from Gunhyun(郡縣) to Dong(洞) or Li(里). Then, it operated as Donggye(洞契) due to general changes in society. This system was mainly organized as Sanghahapgye(上下合契), which both Sanggye(上契), a group formed with Yangban(兩班), and Hagye(下契), a group formed with Sangcheon(常賤), were cooperatively participated. Until today, the research on the Hagye among Donggye in the late Joseon period has left something to be desired because a great part of Hagye data was omitted in Donggye data or only the first name of the Hagye members were written in Jwamok(座目). The presumed reason for missing records of Hagye is because the Hagye was not considered as important part of the group to record or the Hagye members deleted their own records after they improved their socioeconomic status. This research analyzed the organization and operation of Songchon Daedonggye(宋村大同契)’s Hagye which was practiced in Songchonri Naenammyeon, Hoedukhyeon, Chungcheongdo(忠淸道 懷德縣 內南面 宋村里) in the 18th and 19th Century. Unlike most Donggye data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Songchon Daedonggye’s data can be highly valued as a historical material because it contains many information on Hagye members such as name, date of birth, year of Daeyip(代入)․Chuyip(追入), number of members, and status. Originally, Songchonri was a gathering town of particular Sajok(士族), Eunjin Song’s clan(恩津宋氏). Yet, due to the agitated caste system after the 18th century, the constitution of ruling class became complicated and the social structure had changed. Thus, the existing Jaejisajok reduced the the scale of Hyangyak as Li(里) and established Songchon Daedonggye in 1739 in order to restore and maintain their control in rural community. From the 18th century to late 19th century, this system maintained its formation as Sanghahapgye. In addition, this system was utilized as gathering residents by emphasizing the function of Sanggye(喪契) in order to proceed funeral rites in village. In this period, as the original purpose of Hyangyak‘s establishment, the Songchon Daedonggye’s Hagye members were ruled by the Sanggye members. The Hagye members’ main duty involved physical work such as Sangyegun(喪輿軍) and Jomyogun(造墓軍) for Songchonri’s funeral rites. If one of the Hagye’s members was dead or kicked out, their family member filled up a vacancy in order to smoothly proceed the funeral rite and supply work forces. The Sanggye controlled the Hagye strictly to prevent their escape but they also balanced the degree of strictness. If one member violated Donggye’s regulation, the Hagye members were punished more strictly compared to the Sanggye members, Moreover, the Hagye members paid their taxes in terms of their family’s financial condition. It was one of the method to prevent the agitation of village along with SangCheonmin’s social growth. The Hagye mostly acknowledged and accepted their status in relation to the Sanggye. However, some tried to break away from the mandatory activities of Donggye by running away or violating reg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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