荻生徂徠와 통신사 - 徂徠 조선관의 형성과 계승에 주목하여-
Ogyu Sorai(荻生徂徠) and Tongsinsa(通信使) -Sorai(徂徠)'s perspectives on Chosun(朝鮮) by focusing on the formation and succ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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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18세기 일본의 사상가 荻生徂徠가 통신사, 나아가 조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까지의 소라이 연구가 주로 一國史的인 관점에서 思想을 탐구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 것에 비해, 본 연구에서는 동아시아라는 맥락에서 상대화함으로써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소라이의 독특한 면모를 몇 가지 밝혀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소라이가 통신사에 대해 적대감 내지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소라이는 자기 학파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통신사의 시를 극렬하게 비판하였으며, 조선이 문학적 역량으로 일본을 굴복시키려 한다는 왜곡된 인식을 드러냈다. 두 번째는 소라이가 통신사를 폄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신사에 대한 선망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화문명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선이 豊臣秀吉의 무력에 굴복하였으며 통신사가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온 것이라는 왜곡된 역사인식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당대 일본 지식인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국중심주의와 상통한다. 세 번째는 소라이의 조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소라이 학파 내부에서 계승되어 간 점이다. 1763년 통신사와 논쟁을 벌인 龜井南冥에게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福澤諭吉에게까지 이어져 근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근거로 작용하였다.
Abstract
In this paper I try to research what idea Ogyu Sorai(荻生徂徠) had about Tongsinsa(通信使) and Chosun(朝鮮). Until now, most studies of the Sorai are research of thought on a national history. But I try to search some peculial side of Sorai on a East Asia History. This point of view, first, Sorai had hostility or prejudice on the Tongsinsa. Sorai severely criticized chinese poetry of Tongsinsa, and he had distorted recognition that Chosun try to bring Japan to knees. Second, Sorai disparaged Tongsinsa, on the other hand, longed for Tongsinsa. It is originated from Chinese ancient civilization. Also he think that Chosun gave in force of Toyotomi Hideyoshi(豊臣秀吉) and have distorted perception of history that Tongsinsa come to pay tribute to Japan. It is similar to the nationality which most of Japan intellect have in The Edo(江戶) period. Third, Sorai's distorted perception of Chosun succeed to a school of Sorai. We confirm it at the dispute between Kamei Nanmei(龜井南冥) and Tongsinsa. Sorai's perception is also succeed to Hukuzawa Yukichi(福澤諭吉) and be based of invasion of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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