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경연 실시의 의미
The meaning of operation Kyeongyeon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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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국왕과 신하들이 경사를 강론하면서 학문과 시무를 함께 논의하는 장이었던 경연은 비록 고려에서 실시되기 시작했으나 조선에 들어와 크게 활성화되었다. 사회 도처에 만연된 구폐를 청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성리학에 기반을 둔 내성외왕의 이념을 현실에 적용시켜 국왕의 모습을 전면적으로 바꾸려 했다. 그 과제가 경연 실시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창업 군주시절인 태조, 태종 때에는 제대로 실시되지 못했다. 입법 군주로서 등장하였던 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성격상 새로운 왕조 통치 질서의 기본 요체를 담고 있던 성문 법전에 기재되었던 경연을 기피한다는 것이 사실상 곤란했다. 실시의 상설화와 함께 후세에 기억될만한 새로운 전범을 세워야 했다. 시작하기 전부터 여러 가지 관련 조치들을 베풀어 비약적인 발달이 이루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집현전이라는 전담 기구를 설치하여 강의하게 하되, 미진하거나 부족한 부분은 고제 연구 및 편찬 작업을 통해 보충하도록 했다. 경연에 나와 성실하게 집현전 학사들과 경사를 토론하였다. 그 과정에서 종전에 비해 진일보된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기초 작업도 병행하였다. 다시 말해 경연을 통해 고제 연구와 각종 편찬 사업 등과 양법의 제정 및 법전의 개찬 작업 따위가 상호 연계되도록 해서 전보다 한걸음 더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다. 성종 때에 이르러 『경국대전』의 편찬과 함께 제도적으로 완비되었고 내용상으로도 전형적인 체계로 확립되었다. 그럼에도 연산군의 폐정으로 군주의 위상이 결정적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로써 경연을 꾸준히 실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제도적인 틀이나 운영 체계의 확립 등을 넘어서 군주의 내면세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임금의 마음, 즉 성심을 어떻게 다스려야 바르게 될 것인가의 해답이 경연 실시를 통해 제시되어야 했다. 이는 당시 성리학의 심학화 경향과 더불어 경연 내용의 변모를 가져오는 요인이 되었다. 이로 인해 경연의 충실도가 한층 높아졌다. 기복이 있었으나 중종, 명종, 선조 때를 거치면서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 마침내 이황과 이이 등과 같은 인물들이 참여하면서 동아시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이후에도 군주의 마음을 다스리는 문제에 있어서는 이황, 이이 등이 구축해놓았던 학적 체계를 계승하는 측면이 매우 강했다. 그 구체적 모습은 이황의 마지막 경연 강의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바, 시・공간과 인간에 대한 이해 문제가 물리적, 제도적 또는 역사적인 것을 넘어서 마음에 관한 것으로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다.
Abstract
Kyeongyeon(经筵) was a place of expound Confucian scriptures and history(经史) to King and retainers also, discuss study and office business. Expound to king confucian scriptures, contain meaning of mentally sage and exteriorly king(内聖外王), for realization of the ideology of confucian scriptures in the specific political issues. The first operation Kyeongyeon was in the Gorye dynasty, but come to the Joseon Dynasty was greatly activated. Through Kyeongyeon completely remove all vicious elements of king and king's around and then trying to fill justice fully. However, the time of found sovereign, King Taejo(太祖) and King Taejong (太宗), were not conducted properly. When King Sejong(世宗), who advocating legislation, get on the normal track. King Sejong enough to be a model for the future generations was conducted in good faith. Especially he established Jiphyeonjeon(集贤殿) the whole responsibility organization. By King Seongjong(成宗), operation Kyeongyeon was completed institutional with Gyeonggukdaejeon(经国大典) editing. Nevertheless did not prevent maladministration of King Yeonsangun(燕山君). Recognize a truth that only constant operation of Kyeongyeon was not sufficient. Furthermore, beyond a systematic framework, change rightly the inner world of sovereign was required. The answers, how do change rightly the inner world of sovereign, had to be provided through Kyeongyeon. Because of this reason contents of Kyeongyeon more enrich. Through King Jungjong(中宗), King Myengjong(明宗), King Seonjo(宣祖) developed greatly. In those day the last lecture of Lee Hwang(李滉) had a large influence at that time and on future generations as well. At about the same time the subject of change rightly the inner world of sovereign became the key point of lecture of Kyeong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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