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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과 율곡과의 관계

The relation of Gangneung and Yulg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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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강릉은 예로부터 문장과 덕행이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났다고 하여 ‘文鄕’의 고장이라 하였고, 효자‧효부‧열녀가 많이 나온 곳이라 하여 ‘禮鄕’의 고장이라 하였다. 율곡은 1536년(중종 31) 강릉부 북평촌 외가에서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4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학문의 기초를 어머니로부터 닦은 율곡은 16세 때 어머니 사임당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주자가례』에 의해 어머니의 喪葬禮를 정중히 마쳤고, 삼년상을 치른 뒤에도 어머니에 대해 애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방황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자 속세를 떠나 금강산에 들어간다. 1년 만에 하산한 율곡은 1여 년을 강릉에서 머물다 한양으로 올라간다. 율곡은 23세 되던 1558년에 陶山으로 가서 당대의 석학인 퇴계 선생과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데, 퇴계는 그의 제자 月川 조목에게 보낸 편지에서 ‘後生可畏’란 말로 율곡을 칭송하고 있다. 율곡은 29세 되던 1564년(명종 19) 8월에 실시한 대과에서 장원급제한 후 호조좌랑에 임명되어 첫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그후 예조좌랑을 거쳐 이조좌랑, 홍문관 교리, 병조참지, 대사간, 대사헌, 동지중추부사, 이조‧형조‧병조판서를 역임하였다. 6세 때까지 강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율곡은 외가에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강릉을 방문하였고, 그때마다 강릉의 士類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강릉의 사류 가운데 율곡과 교유 관계를 가진 인물로는 12鄕賢 가운데 최운우와 김열이 확인된다. 율곡 사후에 강릉지방에서의 추모활동은 먼저 서원건립으로 나타난다. 강릉지방의 사림들이 율곡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은 石泉廟이다. 석천묘는 건립 당시 구정면 학산리 왕고개[王峴]에 있었다. 그러나 1652년(효종 3)에 강원감사 김익희와 강릉부사 이만영의 협조를 얻어 현재의 위치인 강동면 언별리로 이건하면서 ‘송담서원’이라 개칭하였다. 1659년(효종 10)에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려 1660년(현종 1)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Abstract

From its old days, Gangneung has been called home of literacy for its reputation as a town to produce lots of prominent figures and home of decency for many dutiful sons and daughters and virtuous women. Yulgok was born the third son among 4 sons and 3 daughters of Lee Won-su and Sinsaimdang at his mother's maiden home, Bukpyeong-chon, Gangneung-bu in 1536. Yulgok, who layed his academic groundwork with the support of his mother, he strictly dedicated the funeral rites for his mother by means of Chu-tzuChia-Li(朱子家禮), a book about etiquette when she passed away. Even 3 years after his mother's decease he couldn't overcome the lamentation, wanders and retires to Geumgang Mountain. He finishes the mountain retirement after 1 year and stays in Gangneung for about 1 year before going to Hanyang(Seoul of today). There, he has a historic opportunity to meet Toegye(退溪) who was one of then great scholars at Dosan(Andong of today) in 1558 when he was 23 years old and gives an eulogy for him in a letter sent to Jomok(趙穆), one of disciples of Toegye by using a word, Youth should be regarded with respect(後生可畏). Yulgok is appointed to a position, Hojo-jwarang, after winning the first place in the higher civil service examination at 29 years of age in August of 1564. Later, he severs as Yejo-jwarang, Hongmungwan-gyori, Daesagan, Daesaheon, Dongjijungchubusa, Yijo-panseo, Yejo-panseo, Byeongjo-panseo. Yulgok, who spent his childhood in Gangneung until six years, visited Gangneung whenever there were matters great and small, keeping a close relations with the Neo-Confucian Literati. Included in this the Neo-Confucian Literati are Choi Un-woo(崔雲遇) and Kim Yeol(金說) from 12 Local Worthies(鄕賢). His demise is followed by building SeoWon(private academies) designed to cherish the memory of his decease and one of those halls built under the lead of the Neo-Confucian Literati, a doctrinal faction in Gangneung is a shrine, Seokcheonmyo(石泉廟). At the time when it was being built, this shrine was located on a hill called Wanggogae(王峴), in Haksan-ri, Gujeong-myun. Later in 1652, it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Eonbyeol-ri, Gangdong-myun under the cooperation of Kim Ik-hee, then an magistrate of Gangwon-do and Lee Man-yeong, then a vice envoy of Gangneung, and renamed ‘Sondam-SeoWon’. Later it became the so-called royally chartered private academies(賜額書院) in 1660 by an appeal for royally chartered made in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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